콜라보와 한정판.

 이 두 단어가 주는 사전적 의미와 시장의 해석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례로 삼양과 진로가 콜라보 한 김치 불닭볶음면은 봉지에 두꺼비 그림이 들어갔다는 것 외엔 개인적으로 어떤 메리트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은품으로 레트로 소주잔이나 끼어줬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다른 예로 오뚜기에서 나왔던 오동통면 한정판이 있었다. 경쟁사 대비 다시마를 하나 더 넣은 전략과 매스컴의 홍보 효과를 등에 업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한정판이 출시된 지 꽤 오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마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이언과 진라면의 콜라보

신난다.

 카카오와 진라면의 콜라보 작품인 라면기가 출시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아내를 통해서였다. 기사보다 빠른 정보의 출처는 다음. 판매 품목은 라면기, 컵라면 타이머, 젓가락, 마우스패드, 노트와 펜 세트. 총 다섯 종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라면기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콜라보는 환영이다.

 자정이 지나 판매 예정일이 되자 카카오 선물하기에서 검색을 해봤지만 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오전 9시나 되어야 풀리겠거니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전 8시쯤 다시 들어가 보니 구매가 가능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쓸 요량으로 두 개를 구매한 후 고민에 빠졌다.

'사은품인 진라면 5개는 어디 있단 말인가?'

 재빠르게 기사를 검색해본 결과 사은품은 카카오 프렌즈샵에서만 제공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침착하게 프렌즈샵에 접속해 라면기를 구매하고 사은품까지 확인한 후에 선물하기의 결제를 취소했다. 이후 오전 9시 24분에 카카오프렌즈에서 알림이 하나 왔다.

아마도 품절되지 않은 다른 제품들을 마저 팔기 위해 알림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에 링크를 타고 들어갔더니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전부 판매 개시를 기다리다가 알림을 받고 구매를 시도하러 달려온 사람들이다. 이미 한 시간 전에는 품절되었을 것인데.


이유야 어쨌든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쓸데없는 과대 포장의 나쁜 예.
적절한 포장과 배치의 좋은 예.

 

순한맛은 안 먹어요.
매운맛은 먹어요.
어서 라면을 넣어 달라고 유혹한다.
신라면 골수 팬이지만 이제는 진라면으로 넘어가도 될 정도의 맛과 깊이를 자랑한다.

 실제 사용할 요량으로 샀으니 사재기는 아니다. 다시 팔 생각도 없다. 그런데 한정판 굿즈라고 팔아 놓고 카카오프렌즈에서는 추가 생산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도대체 한정판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노브랜드.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

남녀노소 누구나 익히 아는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 이제는 햄버거도 판다.

노브랜드 버거(No Brand Burger)

 

정말로?

 


 몇 년 전 통큰치킨이 불러온 혁명. 그것이 불러온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와의 논쟁은 꽤나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소비자로서는 경쟁을 통해 저렴하고 맛있는 제품을 기대하게 되는 일이었지만 정작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우후죽순 생겨난 다른 프랜차이즈, 그리고 수수료로 빨대를 꽂은 배달 어플까지 등장해 치킨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물론 편의성 증진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이지만.

 

 어쨌든 햄버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메뉴의 출시나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두려움이 몰려오고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노브랜드에서 버거 나왔다는데 한 번 먹어볼까? 맛있다는데?

 

 노브랜드 제품 중에서 가끔, 그것도 아주 가끔. 과자나 사보는 편이었다. 버거라 함은 슈퍼 듀퍼(Super Duper)나 휴고스 버거(Hugos),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내로 한정 짓더라도 버거킹, 그것도 아니라면 수제 버거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맘스터치 싸이버거를 즐겨 먹긴 하지만.

그래. 한번 먹어보자.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외출을 목전에 둔 아내가 물었다.

“뭐 먹을 거야?”

 처음 시작은 뭐든지 그 집의 대표 메뉴를 먹어보는 것이 실패의 확률을 줄인다. 특히 생긴지 얼마 안 된 집에서 무언가를 시도할 때는 더욱 그런 편이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표 메뉴를 선택했다.

NBB 시그니처.

다른 건 더 안 먹어봐도 되겠어?

산체스?

 

 처음 성공이 두 번째 성공을 보장하지 않기에 한 가지 메뉴를 더 추가했다. 아내의 제안이 솔깃했던 탓도 있었다. NBB 시그니처는 아마도 ‘No Brand Burger 시그니처’. 주문 목록엔 산체스 외에도 스모키 살사, 상하이 핑거 포크가 포함되었다.

 외출 후 돌아온 아내 친구의 버거까지 한 보따리가 도착했다. 노브랜드답게 저렴한 가격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 맛도 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 NBB 시그니처를 한 입 베어 물고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NBB 시그니처 : 보기보다 맛이 상당하다.

저렴한 버거킹. 혜자스러움. 딱 그 정도의 맛.

 

스모키 살사 : NBB 시그니처가 더 맛있다.
산체스 : NBB 시그니처가 더 맛있다. 아보카도 소스? 그것 말고는 스모키 살사와 큰 차이를 모르겠다.

 NBB 시그니처를 제외한 다른 버거의 맛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상하이 핑거 포크, 그리고 오히려 따로 산 땅콩 만주 맛이 기억에 남은 정도다. 상하이 핑거 포크도 머스터드소스를 함께 줬다면 더 나았겠지만.

상하이 핑커 포크 : 사악한 가격과 양만 빼면 괜찮은 사이드 메뉴다. (어떻게 햄버거보다 비싸?)
땅콩 만주는 노브랜드 버거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쏘는 맛과 매운맛. 그중에서 매운맛이 더 중독성이 높고 관심도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맥주, 탄산수, 탄산음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용수에 탄산이 들어간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해본다.

 

 맵지 않은 맛의 순한 음식을 떠올려보자. 입맛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 제안이다.

 

 김빠진 맥주. 감이 오지 않는가? 김빠진 콜라. 김빠진 사이다는 어떠한가? 그렇다. 김빠진, 탄산이 없는 음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이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한 내가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시장에는 다양한 탄산음료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스프라이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간혹 스프라이트가 없을 때는 사이다를 선택한다. 콜라는 태가 어두침침하고 시커먼 것이 어쩐지 이가 썩는 느낌이라 꺼림칙한 측면이 있다. 물론 배다른 민족에서 종종 가져다주는 콜라는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마신다.

 

*작성자 주 - 오타는 아니다. 게르만 민족이 운영하는 딜리버리 히어로가 곧 배달의 민족을 인수할 예정이고 그렇게 된다면 실제로 호칭은 저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육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아내가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살 수 없다. 하하 :D

사이다, BTS 한정판이라는데 이거 사줄까?

 

 냉장고에 쌓여 있는 탄산이 얼마나 되는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최근에 무언가 잘못한 일은 없는지 다시 한번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나서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

 하루가 멀다 하고 도착하는 택배 박스들 사이에 꽤 무게가 나가는 박스 하나가 끼어 있었다. 박스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무심코 흘려보낸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BTS 그리고 ARMY.

내가 아는 아미는 그 army 하나였는데.

 작고 귀여운 칠성사이다 70주년 기념 BTS 크리스마스 한정판 미니병 세트. 상자에만 스티커 하나 달랑 붙여 놓을 것이 아니라 굿즈라도 조금 넣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감히 우리 오빠들을 삐뚤게 붙여놔?

 문제는 한정판이라는 족쇄가 병뚜껑엔 손도 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어차피 안에 든 사이다 맛이 다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행인 것은 아내가 사이다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

아이폰 11Pro Max 만한 크기다. 150ml. 이 정도면 두 개는 들이켜야 한다.

 글을 마치며,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엔 뚜껑을 꼭 따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더 둔다고 와인처럼 숙성이 되는 것도 아닐 테니.

 

 

 코로나의 위세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수도권을 중심으로 더 늘어만 간다. 아직 어린아이를 위해 외출도 삼가며 최대한 집에 있으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은 일이다. 아무리 집돌이 집순이라 해도 잠시 잠깐의 외출은 다시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코로나를 잊고 잠시 콧바람이라도 쐴 겸 동네 산책로를 걸으려고 해도 큰 문제가 있었다. 점점 커가는 아이를 아기띠에 의존해 함께 다닌다는 것 말이다. 내년 봄 이전까지는 절대 필요가 없을 것만 같았던 유모차가 간절해진 이유였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가 짧은 시일 내에 잠잠해질 것도 아니라는 생각, 겨울에 찬 바람을 맞으며 산책할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때 아내의 한마디가 내 마음을 돌려세웠다.

유모차도 카시트처럼 적응이 필요하대.

 그 어떤 반박이 필요 없는 설득이었다. 검진을 위해 병원을 오가며 카시트와 씨름했던 기억이 떠올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 조사

 후보군은 아내가 다음, 네이버, 블로그, 맘 카페의 리뷰, 후기를 모두 샅샅이 뒤져 이미 추려 놓은 후였다.

부가부, 오르빗, 잉글레시나

 이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할 예정이었다. 처음 방문한 베네피아에 모든 제품이 있었다면 결정이 쉬웠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르빗이 없었다. 투박한 느낌의 잉글레시나보단 부가부에 눈길이 더 갔다.

 

트렁크에 유모차를 싣고 내리는 일은 내 담당이었기 때문에 무겁고 큰 디럭스보단 절충형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중에서도 매장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부가부 비5가 우리의 마지막 선택지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아내가 말을 꺼냈다.

오르빗도 보고 싶은데.
결정한 거 아니야?
다 보고 결정해야 후회가 없지. 그리고 카페 이런 데서 옆으로 돌릴 수 있는 게 얼마나 편한데.

 그렇게 오르빗을 볼 수 있는 베이비플러스까지 들리고 나서야 부가부 비5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오르빗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느낀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 아파트 인근에서 오르빗 실사용자를 마주친 때였다. 벤치에 앉아 있던 엄마의 오르빗은 정방향을 보고 있었다. 옆으로 돌려 아이와 마주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매

 

 지인 찬스를 쓰기 위해 문의만 해본 결과 부가부 제품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득과 실을 고려해서 내린 합리적인 결정은 결국 후보였던 잉글레시나 앱티카 써밋 쟈카드였다. 가격과 부수적인 혜택이 무거움을 이긴 순간이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

 

 9월쯤부터 주문을 넣고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매장 오픈 일정이 연기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몇 번이나 그냥 취소하고 부가부 비5를 사던지 아니면 내년에 나올 부가부 비6를 사자는 말이 오고 갔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가 우리의 기세를 꺾었다. 차가워진 바깥공기도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는 일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주문이 들어갔다는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아내는 그로부터 며칠 동안 왜 이렇게 택배가 오지 않느냐며 투덜거렸지만, 우리는 마침내 집 앞에 놓인 거대한 택배 상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돈내산


조립과 시운전

단아한 자태로 우리를 기다린다.

 아내의 표정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다른 육아 용품이 왔을 때보다 더 신나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달 여를 기다린 제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매뉴얼을 꺼내놓고 그림을 보며 순서대로 비닐을 벗겼다. 조립에 일가견이 있는 아내를 배려해 공정은 공평하게 아내와 나 50:50으로 진행했다.

구성품 별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거대한 바퀴는 크기만으로 안정감을 준다.
매장에서 체험했던 대로 접고 펴는 것. 시트 조절이 완벽하다. 무게도.

 조립을 끝낸 유모차를 보니 어서 태우고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다고 자는 애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들뜬 마음을 억누르고 미세먼지가 잠잠한 날, 날이 조금 포근하다면 함께 산책로를 걷기로 아내와 그렇게 약속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삶의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여가 시간을 즐기는 방법까지, 언급하자면 밤을 새워야 한다. 그중에서도 영유아 시기에 가장 많이 회자되며 언급되는 것이 아이의 수면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출산 전에 아내와 계속 이야기했던 부분도 그것과 맥락을 함께한다.

하나, 아이는 원래 계속 깬다.
         10개월 동안의 삶의 방식이 변하는 과정엔 부모의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     아이는 원래 운다.

         그것이 아이의 언어이다.

 그렇다. 시간이 지나며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의 수면 시간은 늘어나며, 함께 부모의 수면 시간도 늘어난다. 하지만 더불어 늘어나는 것이 있다. 모유량이다. 아이가 자는 시간에도 엄마는 쌓이는 모유를 주기적으로 따로 비워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모유수유 필수 육아템 첫 번째. 유축기

아내가 사용 중인 시밀레 프리티(cimilre Free-T) 웨어러블 유축기

 아내 또한 그 시기를 지나고 있고 육아를 위한 아이템의 도움을 받고 있다. 출산 초기에는 시 보건소에서 지원하는 유축기를 대여해서 사용했으나 동일 모델이 아닌 휴대용을 따로 구매했다.

 콘센트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문제는 배터리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 사용 후에 습관적으로 충전을 해 놓아야 다음 사용 시에 난감한 상황을 피해 갈 수 있다.

 

이전에 사용하던 지퍼백 형태의 MOTHER-K 모유 저장팩

 이 유축기와 짝을 이루는 1회용 모유 저장 팩이 있다. 처음에 사용하던 저장 팩은 유축 후에 밀봉할 때나 젖병에 옮겨 담을 때 손이 계속 닿아 신경이 쓰였다. 아내에게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이거 사면 유축한 다음에 젖병도 필요 없고 닫을 때 손 안 대도 돼서 좋은데 이걸로 살까? 어차피 사긴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답변은 한정적이지만 이번 경우엔 평상시보다 더 흔쾌히 대답했다.

그거 괜찮네.

모유수유 필수 육아템 두 번째. 모유 저장팩

 오래지 않아 도착한 택배 상자. 그 안엔 새로운 형태의 모유 저장팩과 부속품들이 담겨 있었다. 백일이 지난 상황이라 유축기 관련 소모품들도 함께 도착한 모양이다.

 시밀레 프리티백(cimilre Free-T bags). 설레임 용기를 닮은 이 모유 저장팩은 청결 측면에서는 확실히 의심할 것 없는 디자인이다. 연결 방법도 그렇게 어렵진 않다.

 

프리티 유축기에 프리티 백 연결 방법

유축 후에 밀봉은 더 간단하다.

프리티 백 유축 후 밀봉

 치명적인 단점은 하나였다. 아이가 긴 숙면에 들기 전 젖꼭지를 연결해 수유를 시도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유가 새는 바람에 대 환장 파티가 벌어졌다는 것. 이후에 아내가 물만 담아 확인해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모유 저장팩으로서 청결과 편리함. 이 두 가지의 장점만으로도 아내는 만족해했다.

 

 한 번씩 이렇게 새로운 육아 용품들이 도착할 때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무거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그중에서 가끔 그렇지 않은 제품들도 있긴 하지만.


*참고 사항

*사용법 숙지 미숙에서 기인한 것인지 제품 불량에서 기인한 것인지 확인된 바는 없다. 그러나 아직 그 원인을 모르며 아내는 시도할 생각이 없다.

**이전에는 젖병에 유축 후에 모유 저장팩에 옮겨 담아 수유할 때 다시 젖병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 모유 저장팩을 사용할 경우엔 모유 저장팩에 유축이 가능하니 수유 시에도 젖병이 필요 없다. 젖꼭지 연결 후에 모유만 새지 않는다면.

출처 입력

 

 

 

 

 아내가 질문을 꺼낸 건 할로윈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아이의 백일 사진 촬영이 며칠 후에 있을 예정이었기에 기억은 선명하다.

 

이거 살까?

 

 육아 용품과 끼니를 때울 신선 식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로 오는 요즘, 나의 답변은 한결같다.

 

필요하면 사야지.

 

 그러면 보통 휴대전화에 결제를 알리는 문자가 오는데 이번은 조금 달랐다.

 

와서 한번 골라봐.

 

12종의 위엄

 


 

머거본 a.k.a 술안주

 

 아이가 잠든 후 멍하니 TV에 고정되어 있던 눈알을 굴려 아내의 휴대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안에 펼쳐진 것은 끝도 보이지 않는 머거본의 향연이었다. 맥주 한 캔이면 한계에 다다르는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해 술은 입에도 댈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아내가 운전에 미숙한 이유도 있었다. 또한 모유 수유 중인 아내가 술을 마실 것도 아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만 나는 이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의 간식

 

 그랬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아내 스스로를 위한 선물이었다. 대량 구매가 가능한 품목들이 있었지만 샘플러처럼 여러 가지를 맛볼 수 있는 할로윈박스 세트(12종 구성)가 괜찮아 보였다. 할로윈 박스를 증정한다는 말도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내의 한마디 말이었다.

톡딜이라 12,900원이면 살 수 있어.

 

 할로윈의 기원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그리고 톡딜은 무엇인지 들어본 적도 모르는 내가, 그렇게 아내의 구매를 지지했다. 정가 32,000원 대비 약 60% 할인된 가격. 아직도 믿을 수 없는 그 가격에 결제는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아담한 주황색의 할로윈 박스

 애초에 결제할 때만 해도 음식점 앞이나 마트의 흉물스러운 크기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택배 상자 안에 담긴 그것의 크기는 꽤나 아담했다.

언제나 첫 만남은 설렌다.
하얀 박스 안에 넣을 거면 다 넣지 김새게 몇 개를 빼놨다.
하얀 상자는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맥주를 부른다.
그래서 꺼냈다. 하지만.

 가지런히 정리한 12종의 간식거리를 주방 구석에 자리한 이케아 이바르 선반에 올려놓았다. 이미 공간을 차지한 수많은 라면과 다른 과자들을 밀어내고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함께 꺼내본 최애 하이네켄 150 ml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를, 아내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째려본다.

 

기분만 내보는 거야.

 

 

 

 둘째와 둘째가 만나 결혼해 첫째를 낳아 함께 하다 보니, 둘째의 설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한다. 서로 둘째로 살며 알게 모르게 받았던 설움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첫째와 첫째가 만나 결혼한 형네 가족은 첫째의 설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는 것을 보면 첫째도 나름의 설움이 있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 온전히 근 일 년 혹은 그 이상을 자신의 아빠 엄마로 믿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다른 애인, 여기서는 둘째가 생기니 일 평생 자기가 믿고 의지했던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첫째는 빼앗긴 전부를 위해 싸우고 둘째는 전부를 쟁탈하기 위해 싸운다. 이것은 첫째와 둘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닌가 한다.


 아직 그 전부가 온전히 자신의 것인 우리 첫째가 백일을 맞이했다. 엄마 뱃속에 자리 잡아 생명으로서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날.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양가 부모님이 오셔서 같이 밥이라도 먹었겠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선 요원한 일이다.

 

 스튜디오를 가거나 출장 스냅을 부르는 일도 꺼림칙한 것은 매한가지. 50일 사진도 셀프로 찍었겠다 자신감이 붙어 아내에게 미리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 형네 집은 백일상 나눔 해서 집에서 사진만 간단히 찍었는데.”

 

 둘째 조카의 백일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첫째 조카는 확실히 백일 떡을 받으러 갔던 기억이 있다. 내 말을 들은 아내는 흔쾌히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이곳저곳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안양 인근에서 백일상 대여해 주는 곳 중에 괜찮은 곳이 있다며 링크를 하나 보내주었다.

 

 함께 앉아 다양한 컨셉의 백일상과 의상,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어땠는지 사진을 비교했다. 대부분의 사진 배경이 회색 아니면 흰색 벽지였기에 아내는 백일상이 놓일 위치가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거실 외에 마땅한 장소가 없었을뿐더러 커튼의 색상이 느끼기에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보면 또 다를 거야.”

구도 확인 중

 늘 그렇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이게 괜찮을까 싶다가도 찍어 놓고 보면 괜찮은 것들이 있다. 물론 그 반대도 많지만.

마스코트 쥐선생(혹은 미키)과 함께.

 모던한 상. 따로 주문한 백일 떡과 수수 팥 떡, 그리고 송편. 바나나와 사과, 샤인머스캣까지 올리니 꽤 그럴싸한 백일상이 되었다. 의자는 아이 엉덩이가 쏙 들어가 넘어질 염려는 없었다. 다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내가 뒤에 숨어 계속 의자를 잡고는 있었다. 아이가 간밤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느라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웃는 표정은 없었지만 아내는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모자가 제법 잘 어울린다.

 아내가 백일상 외에 심혈을 기울여 고른 백일 한복도 그렇고 정장, 그리고 추가로 대여한 왕관 모양 모자를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제 것이 아닌 옷과 처음 앉아 보는 의자가 불편했는지 금세 아이가 칭얼거리는 바람에 많은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물론 합리적인 비용에 만족할만한 사진을 남겼으니 이로써 첫째의 백일은 여러 사람의 축하 속에 잘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인내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생기지도 않은 둘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벌써 드는 건 왜일까. 나중에 둘째가 태어나 백일을 맞이한다면 귀찮아하지 않고 적어도 이런 백일상은 꼭 해주리라 다짐해 본다.

할로윈 기념. 펌킨 대신 탠저린. Trick or treat! 나도 사탕 먹고 싶다 :D

 

 

2020년 7월 24일 출산 당일.

 

 코로나19 덕에 마스크를 벗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차로 이동을 결정한 순간부터 모두가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뒷좌석의 아내는 진통을 반복하다가 간간이 잠에 들었다. 괜히 마음이 아렸다. 새벽 두시에 거의 다 되어서야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처음 도착한 병원, 가로등만 지키는 그곳에서 갈 길을 잃은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우선 조산사님과 아내만 먼저 본관 앞에 내려두고 나 혼자 주차장을 찾아 헤맸다. 그 새벽에 나를 안내해 줄 누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길가에 빈틈을 찾아 차를 넣고 빼기를 몇 차례. 급기야 주차금지 구역에 차를 대 놓고 시동을 껐다. 그렇게 가려다 말고 아내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다. 조산사님의 간단 명료한, 하지만 내게는 긴 설명이 이어졌다.

본관으로 들어와서 수속 밟고 2층으로 올라온 다음에 반대쪽 끝으로 와서 한층 올라오면 모자보건센터에요. 거기로 오면 돼요.

 침착하게 머릿속에 긴 문장을 되뇌며 나오는 길에 주차장 입구를 발견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다시 차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음만 조급해져서 평정심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게 주차장에 차를 밀어 넣고 나서야 산적한 문제 중 하나를 해결했다는 사실에 정신이 조금 들었다. 신분증과 카드만 챙긴 채 본관을 찾아 달렸다.


 본관 원무과에 도착해보니 이미 수속은 조산사님이 대신 진행해 주신 후였다. 입원 수속을 밟아야 하니 가서 주는 서류를 받아 오면 된다고 했다.

어떻게 가면 되나요?

 노파심에 내가 가야 하는 길을 다시 물었고 대답은 간결했다.

2층으로 올라간 다음에 반대쪽 끝으로 가서 한층 올라가시면 됩니다.”

 같은 설명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간간이 비상등 불빛만 비추고 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달렸다. 진통 중인데 이 길을 어떻게 갔을까, 무슨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까. 마음이 급한 와중에도 처음 와본 이곳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애썼다.

 

 길의 끝에서 발견한 계단으로 올라가니 굳게 닫힌 세 개의 문만 나를 마주했다. 몇 번을 아내에게 전화했지만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며 그 앞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이곳 말고는 갈 수 있는데도 없어 보였다. 잘못 온 건 아닐까 층 안내도를 몇 번이나 확인했을까 그때 굳게 닫힌 문 중 하나가 열렸다.

산모는 지금 검사 중이에요. 일단 이거 가지고 1층에 원무과 가셔서 입원 수속 먼저 밟고 오세요.

 원무과에 다녀온 뒤 또다시 기다림. 3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때야 차에 실어둔 짐을 찾아왔다. 아내가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던 촬영 장비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렇게 3층 의자에 앉아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다시 문이 열렸다.

“이제 들어오시면 돼요.”

 

 간호사가 먼저 입원과 진료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다.

지금 산모 고열 때문에 아이도 위험할 수 있어서 바로 제왕 절개 수술 진행할 거예요.

 병원에 오자마자 확인한 아내의 체온은 병원으로 출발하기 전보다 조금 더 올라 있었다.

'38.4'

그리고 코로나가 의심되는 상황이라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수술 후에 1인실을 써야 돼요.

 설명을 듣는 사이 검사를 마친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밝은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수술실에 누워 수술 준비가 진행되며 대화를 나눌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조산사님은 수술 준비가 시작되자 한마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나셨다.

별일 없을 거예요. 기도할게요.

 수술 대기실에서 대화 내내 찾아오는 진통에 아내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손을 잡아주며 했던 말을 또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호흡해야지.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노력했다. 그리고 수술실로 향하기 전 손바닥에 하트 하나 그려주는 것으로 많은 말을 대신했다.

잘하고 와.

 


새벽 3시 30분.

 

 수술은 30분 후 시작이었다. 그렇게 수술실로 향하는 뒷모습을 지켜본 후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가족 분만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런저런 안내를 받고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몇 년을 찾지 않은 신을 찾아 아내와 태어날 아이의 안녕을 비는 것. 그것이 그 시간 내게 허락된 유일한 행위였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머릿속을 채운 여러 생각들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의 옷가지를 정리한 후 소파에 앉아 문을 마주했다.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잠들 수도 없었다. 잠이 들어서는 안됐다.

 

 창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족 중 누구에게라도 연락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 아내의 수술도 시작하기 전이었다. 물끄러미 흘러가는 시간만 바라보던 나는 휴대폰의 메모 앱을 열었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며칠 간의 기억을 더듬으며 지금까지 함께 겪은 모든 일을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보호자님.

 

새벽 4시 10분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내 눈앞에 아주 작고 여린 아이가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쌔근거리며 울지도 않는 아이.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내게 간호사가 간단한 설명을 했다.

4시 정각에 건강하게 잘 태어났고요. 기본적인 검사는 문제 없는데 산모가 열이 난 거 때문에 추가로 검사가 진행될 거예요. 그건 신생아실에서 따로 연락 갈 거예요.

산모는 괜찮나요?

이제 봉합 시작했을 거고 끝나면 회복실로 갈 거예요. 아버님. 사진 하나 찍으셔야죠.

 그제야 정신이 들어서 사진을 하나 찍었다. 이어 동영상을 찍기 시작하는데 안도감이 밀려왔다.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간신히 눈물을 참아내며 입을 벌렸다.

이제 가셔도 돼요.

 간호사들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문을 닫고 돌아간 직후 소파에 앉아 입을 막고 오열을 했다. 건강하게 잘 태어난 아기에 대한 고마움. 진통에 몸을 비틀던 아내의 모습에 대한 미안함. 처음부터 고민 없이 병원에서 출산을 계획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할 필요 없었던 고생을 시키고 아내와 아기를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얼마나 흐느꼈을까,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찍어두었던 사진, 그리고 동영상을 돌려보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조그맣고 작은 아기가 아내 뱃속에 있었다니. 몇 번이고 동영상을 돌려보는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신생아 중환자실인데요.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고요. 격리 후에 음성 판정 나오면 오후쯤에는 신생아 실로 이동할 거예요. 그리고 신생아 출산 검사는 문제없고요. 그런데 산모 백혈구 수치도 높았고 혈액 배양 검사를 해야 해서 아기는 5일 정도 입원해야 할 거예요.

 다른 말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문제없다는 말 외에는. ‘다행이다’라는 말을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아내가 회복실에서 돌아온 후에야 그 말을 멈출 수 있었다. 돌아온 아내에게 한 마디 말로 모든 말을 대신했다.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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