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주제: 업무 이야기 말고 우리는, 밥을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가정: 대부분의 이야기는 밥을 먹으며 전해진다.

예외: 일부는 차를 마시면서도 전해진다.

대상: 연구원 L (글쓴이를 지칭한다.)


1st try : 티 타임

 연구원 L은 과묵한 편이었다. 회사에서는 업무 외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가 업무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주로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특히 팀장님이 없을 경우에 주제는 더욱 다양해졌다. 그런 그의 표정이 심각해진 것은 사수가 차를 한잔하자며 그를 따로 불러냈을 때였다.

 

"저 이번 달까지만 일하게 됐어요."

 

 연구원 L은 애꿎은 핫초코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한 만큼 그의 몸엔 카페인 분해 효소도 부족했다. 그런 그가 오후에 마실 수 있는 것은 카페인이 없는 음료뿐이었다. 그것도 겨울엔 유자차 아니면 핫초코로 한정되었다. 까다로운 그보다 더 까다로운 팀장과 그의 사수였다. 그 사이에서 큰 문제 없이 몇 년을 잘 지내왔기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팀장님한테는 말하셨어요?”

 

 그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언젠가는 떠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다가온 퇴사였다. 그녀는 미안한 기색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전부터 이야기했었는데 오늘 결정 나서 알려주는 거예요.”
“어디 좋은 데로 가시나요?”
“그런 건 아니고 사정이 있어서.”

 

 일신상의 이유. 그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연인이 헤어질 때처럼 나름의 이유는 있었겠지만 묻는다고 상세히 알려줄까. 그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의 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들을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의 단호한 표정은 돌이킬 수 없음을 말하고 있었다.

2nd try : 런치

 회사란 곳이 그러하듯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체하고 쉽게 망하지 않는다.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연구원 L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팀장님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려보고 싶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입사하자마자 이런저런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경력직인 연구원 L을 포함한 팀장 이하 그의 팀원은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가며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회사 사정이 변하며 위기가 몇 차례 있었다. 구조조정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던 셋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점심은 특별했다. 연구소 대부분의 직원들은 싸고 가까운 곳을 선호했다. 그러나 합의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새로운 밥집을 찾아다녔다. 새로 조성된 업무 단지에 있었던 회사라 맛있고 가격도 적당한 곳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은 조금씩 범위를 넓혀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맛있는 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날은 종종 가는 ‘카가야쿠’라는 선술집으로 향했다. 업무 단지라 대부분의 가게가 점심 메뉴가 별도로 있었다. 그 가게의 점심 메뉴는 일본 라멘이었다.

* 글쓴이 주 : 그때는 지금만큼 일본과의 관계가 경색되기 전이었다.

쿠로마유 라멘

 대부분의 메뉴가 좋았지만 그날의 주메뉴는 쿠로마유 라멘이었다. 돈코츠 라멘에 특제 흙마늘 기름으로 풍미를 돋운 것이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메뉴였다. 그 순간에 팀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적어도 연구원 L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사수가 팀장에게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은 알고 있었다. 연구원 L도, 팀장도 다시는 그렇게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할 기회는 없으리라는걸. 마주치고 사라지는 그날의 노을처럼.

그날의 노을.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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