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어린 밤

 

 봄이 오면 오는 대로.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나. 길 위로나 흐르는 물 곁으로 계절은 머문다. 북적이는 사람만큼이나 꽃은 무엇이 궁금한지 앞다투어 계절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밤이든 아침이든 가리지 않는다. 임신한 아내의 운동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함께 나간 우리도 그랬다.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텅 빈 길이 오히려 허전했다. 아마도 사람들 북적이는 벚꽃 구경이 익숙한 탓이겠지. 팔 벌려 은은한 분홍 꽃을 틔운 벚나무들을 대신 맞이했다.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아내는 말을 꺼냈다.

 

“내일 밝을 때 다시 와보자.”

 

밤의 벚꽃

 


오리 두 마리

 

 만발한 벚꽃은 구름처럼 두둥실 길가에 머물러 있었다. 군데군데 자라난 가지에서 피어난 꽃잎은 그 부스러기 같기도 했다.

봄이 절정이다.
이름을 몰라서 미안.
이름을 몰라서 한 번 더 미안.

 물가의 오리는 도망가지도 않고 부리로 몸을 손질한다. 그 모습이 신기했던 나는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신기하다. 도망가지도 않네.”
“사람이 익숙해서 그런 거 아닐까?”
“갑자기 품에서 그물이라도 꺼내면 어쩌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삼촌은 그물 같은 거 없다.

 


오늘의 태양은 어제의 달빛보다.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는 용케도 허리를 부여잡고 자리를 지킨다. 하늘로 뻗어나간 가지는 새들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아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예쁘다.”

 

봄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
꽃잎을 괴롭히는 새야. 네 이름도 몰라서 미안.
예쁘다.
보고 또 보아도.
그렇다.

 우리의 순간도 어쩌면. 오히려 그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겨우내 억눌린 열망을 사방에 틔워낸 꽃나무들처럼.

 

 늘 걷다가 보면 수많은 풍경과 순간을 마주한다.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않고 찾아오는 봄처럼, 다른 것들은 지나가고 그렇게 또 찾아온다. 우리를 기다리는 여름처럼. 걷다가 보면.

 

여름은 슬며시 계절의 끝자락에 발을 디민다.
하지만 봄은 이제 절정이다.

¿사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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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며 찍은 영상 편집본

https://youtu.be/1Jbp2ib1ncw

 

 

 

초입

 기억에 봄은 요란했다. 어딜 가든 꽃보다 사람이 많았다. 벚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면 용케 알아채고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래서, 늘 만개하기 전에 꽃구경을 나섰다.

 

 이번엔 무슨 조바심이 났는지 스스로를 채근했다. 이른 볕에 싹을 틔우는 식물처럼 기지개를 켰다. 바람이 제법 쌀쌀했지만 오랜만의 콧바람이 싫지는 않았다. 이제는 필수품이 된 마스크 사이로 스미는 봄바람이 향긋했다. 오리 두 마리는 사이좋게 삼막천을 제 집 삼아 잠을 자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뒤로 돌아간 고개를 보고 의구심이 든 나는 함께 걷던 아내에게 속삭였다. 누가 들을 세라.

오리의 목관절이 유연하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알았다.

“죽은 건가? 자고 있는 거겠지?”
“자고 있는 거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걸어오던 부부가 잠시 길을 멈췄다. 그리고 아저씨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 오리 죽었나 봐!”

갈림길

 많은 것을 놓치며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안교 끝에 걸린 개나리며 미처 피지 못한 벚꽃도. 지척에 널려 있지만 함께 할 여유는 없었다.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에 빠져 지낼 시간은 많았다. 흐르는 물에 비친 아파트가 내 모습 같기도 했다. 주위의 풍파에 형체를 잃어버린 그 모습이.

물의 파동은 피사체를 뒤흔든다.

 괜스레 싱숭생숭한 마음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탁 트인 산책로를 보니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나리는 이미 온 대지를 노랗게 물들였다. 시원하게 흐르는 천은 그 주변을 가로질렀다. 새들은 집이라도 짓는지 분주하게 날개를 퍼덕였다.

채근하지 않아도 앞장서서 봄을 알린다.
물이 제법 흐른다.
너도 이름이 있을 텐데.

 어느덧 갈림길을 마주했다. 오늘은 며칠간 가던 충훈부 쪽이 아닌 양명고 쪽으로 향했다. 가끔은 다른 길에서 좋은 것들을 마주할지 모르니.


 더 넓게 퍼진 물줄기 주위로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아직 몸을 웅크린 꽃잎들도 있었다. 햇빛이 드는 곳은 몸을 활짝 편 것도 있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그 길에서 저희들끼리 신이 나 있었다. 도란도란 누가 더 예쁜가 경연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예쁘다.
계속 보아도 그렇다.

 걷다가 보면 놓치기 싫은 순간을 마주한다. 손 아귀에 움켜쥐고 어딘가에 묶어두고 싶기도 하다. 그런 건 매년 찾아와도 여간 싫지가 않다. 우리가 발을 디딘 곳곳에 남은 추억처럼. 이 계절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걷다가 보면.

내년엔 마스크 없이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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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며 찍은 영상 편집본.

 

길지 않아요. 1분만 투자하세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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