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즐기는 아빠들이
남자아이가 자식으로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꿈.
아이가 크면 함께 플스 패드를 잡고
게임 생활을 즐겨야지.

나는 그보다 멀리를 내다보며,
'손가락 관절염이 오기 전까지
패드를 손에서 놓지 않겠다'
수없이 되뇐다.

물론 그 어떤 말도
생일을 무기로 구매에 이른 PS VR2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는다.


1. 천운 혹은 마케팅에 속은 자

 PS4 Pro 구매 대란부터 PS5 구매에 이르기까지 언제부터인가 구매권을 추첨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운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혹은 지출의 신이 나와 함께 하고 있던 것일 수도.

 

 PS VR2도 다르지 않았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SONY 마케팅의 노예가 된 나는 출시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아이가 걷기 시작했고 거실의 모든 게이밍 기기는 방안의 책상 위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TV로 즐기던 게임을 작디작은 모니터로 하려다 보니 그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웠나 보다.

 

 물론 시간이 지나 아이가 자신의 장난감에 집중하기 시작하며 일부 기기를 거실로 옮겼다. 그렇게 육아와 일 사이의 틈에 게임을 채워 넣던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아내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VR2 나온다는데 이걸로 게임하면 TV도 필요 없고 내 생일 선물로 사면 어떨까.”

“그래?”

 

아내의 대답이 이어진 그 순간, 나의 오감은 어느 때보다 민감했고 두뇌는 AI처럼 빠르게 말의 톤과 표정을 분석하고 있었다.

 

“근데 좀 비쌀 거 같긴 한데.”
“뭐 일한다고 고생하는데. 그리고 난 TV도 잘 안 보고 어차피 거실에서 TV를 없앴으면 하니까.”

 

최근에 큰 잘못을 했는지 곰곰이 지난 나의 하루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아니면 아내가 원하는 큰 무언가가 있었을까?

당첨이라는데 출시일을 지나서 보니 온라인에서 구매 가능한 걸 보니 예상보다 사전 구매가 적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구매권 추첨 일이 되어 구매권 추첨에 성공하고 구매에 이르기까지,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다만 정말로 거실에서 TV를 치워버리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가 있었으리라 어림 짐작할 뿐이다.

언제 오는 겁니까
 

 

2. 조상님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는데

아침부터 이런 연락은 설레게 한다.

 요즘 아이가 택배 상자를 보면 공룡알이 들어 있다면서 먼저 뜯는 통에 택배가 도착한다는 알림을 받은 순간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밀린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뤄두고 퇴근을 선택한 나를 위해 아내는 아이의 손길로부터 택배 상자를 지켜주었다.

실물 영접.
 

 기대에 부풀어 택배 상자에서 VR2 박스를 꺼내 올린 순간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애플 급의 감성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이전 플스 포장들에서 느껴온 그 기분 그대로를 느꼈다. 싸구려 포장. 봉인 씰도 아닌 박스테이프 같은 테이프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제품을 지켜주는 박스 내부는 여전히 몇 만 원짜리 제품의 포장인 듯 싸구려 티가 넘쳤다. VR2 기기와 새 패드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SONY의 커다란 선물이었다.

봉인 씰부터 원가 절감의 흔적이 느껴진다.
 
호라이즌이라 참는다.
박스도 원가절감에 충실한 게 느껴진다.
문제의 길고 긴 USB C 연결선이 보인다. 하지만 실 플레이 시에는 거의 신경 쓰지 못할 정도다.
플스 여정 처음으로 받아본 디지털 구매 쿠폰.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구매한 것에 만족.

 그래도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단순히 박스 하나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플스에 VR2를 연결하고 ‘콜 오브 마운틴’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플스4에서 플스4 Pro로 이전, 그리고 플스4 Pro에서 플스 5로의 이전이 그러했듯 모든 과정이 쉬웠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그냥 꽂고 켜면 TV 화면에서 가이드 해준다.
 
드디어 시작이다.

3. 멀미와 인지부조화, 그리고 부작용

VR2 기기를 착용하고 눈앞에 처음 나타난 화면을 마주했을 때 나의 반응은 이랬다.

‘음…’

하지만 이내 내 반응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오…’

 게임을 위한 공간 인식을 위한 과정은 이전 다른 VR 기기를 접해본 적 없는 내게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임 다운로드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고 그 사이 VR을 사용해 잠시 ‘넷플릭스’와 ‘메탈슬러그’로 시간을 보냈다.

 

 처음 VR을 출시했을 때 Sony에서 말했던 홀로 영화관 가운데 앉은 기분, 딱 그대로였다. 100인치 정도 되는 스크린이 눈앞에 있었고 그대로도 훌륭하다 생각했다. 이어 게임 다운로드가 끝나고 ‘콜 오브 마운틴’의 세계로 떠난 순간 다시 한번 나의 반응은 달라졌다.

‘와…’

 평소에 생각해왔던 VR이라면 이래야지 했던 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소드 아트 온라인’, 아니면 ‘레디 플레이어 원’의 현실판이었다. 네모난 화면은 없었다. 시야 전체를 가득 채운 게임의 세계만 있었다. 완전한 호라이즌 그 자체였다.

거실에는 아들이 깔아 놓은 장애물이 많다. 조심해야 한다. 최초 플레이 후 플스 본체는 다시 방으로.

 걷고 벽을 타고 오르는 동안 뇌는 분명하게 현실에서 응당 그래야만 하는 느낌을 전달해 주었다.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시각 정보와 운동 정보의 불일치는 곧 내게 멀미를 선사해 주었다. 멀미 때문에 FPS 게임은 손도 대지 않는 나에게 이건 너무나 커다란 장벽이었다. 메슥거리는 속 때문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

 그러니 게임 속 화면의 나도 함께 주저앉는다. 그대로 바닥을 쓸어봤다. 속이 메슥거리는 상황에서도 감탄사를 멈추지 못했다. 게임 내 여러 요소는 고개를 끄덕이게 할만했다.

 

 그리고 멀미와 인지부조화를 뛰어넘는 부작용이 남았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실제와는 다른 인지 상태에 적응하려고 했던 뇌는 이제 다른 상황을 직면했다. 현실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 움직인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 어린 시절 트램펄린을 한참 타고 땅에 내려왔을 때 땅이 발에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늘 그래왔듯 멀미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자연스레 플레이 타임은 늘어날 것이다. 고작 멀미와 인지부조화, 그리고 부작용 때문에 이 새로운 세계의 탐험을 멈추기엔 모든 것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다.

 

 충돌이 늘 나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 삶에 자리 잡는 것을 탄생이라고 부른다. 탄생과 탄생 사이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그것을 우리는 한정판이라 칭한다.

 이미 한정판 역사, 그리고 겨울만 오면 생각 나는 호빵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호찜이. 그 뒤를 이을 호찌머그의 소식을 들은 것은 아내와의 대화에서였다.

 

“삼립에서 또 호빵 굿즈 나왔대. 오빠가 좋아할 걸?”
“그래?”
“좋아할 거 같아서 벌써 샀어.”

그렇다. 나이가 먹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서도 아직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이 좋다. 택배를 마주하고 나서 주체할 수 없는 나의 심장은 아직, 그 언젠가 유년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꾸 이렇게 굿즈를 만들어 낼거면 월급 좀 올려달라고 누가 이야기 좀 해줬으면.

 박스를 뜯자마자 독특한 상자 포장이 눈에 들어온다. 프릳츠와의 콜라보란다. 찾아보니 레트로계에서는 꽤나 이름을 날리는 브랜드였다.

야채 호빵이 제일 좋다.
이런 걸 기다려왔단 말이다.
그래. 너도 호찌머그를 들고 있구나.

 지난번 호찜이 때와 마찬가지로 호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호빵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곁에 있는 머그에 집중했다. 엄지를 치켜든 물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귀여움은 어서 빨리 호빵을 얹어 달라며 손짓한다. 그렇다면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홀린 듯 호빵을 꺼낸다.

호빵 하나 누일 아늑한 공간이다.
하나 남은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에디션, 호찜이, 호찌머그.
이제 호빵을 돌리기 위해 두번 수고할 필요가 없어졌다.
 

 단팥호빵을 좋아하지 않지만 시작은 단팥호빵이 인지상정이다. 호찜이와 호찌머그에 나란히 호빵을 올린 후 전자레인지에 넣어본다. 찬바람을 맞은 후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는 듯, 호빵이 그러하다. 온몸에서 김을 내뿜으며 어서 자신을 들어 올리라고 유혹한다. 그러면 나는 유혹을 못 이기는 척 또 어리석게 손을 뻗는다.

 
찜기의 과거와 현재를 보는 것 같다.

 

 

아, 뜨겁다.


 벌써 스무 해를 넘게 호빵을 먹어왔음에도 갓 꺼낸 호빵이 뜨겁다는 사실을 매번 망각한다.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것은 손이다.
그래서 매년 겨울 미안하다.

이제 갓 꺼낸 호빵이 뜨겁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안다. 적어도 올 겨울 안에는.
반드시 호호 불어야만 한다.

 호빵은 맛있다. 찜기에서 바로 꺼낸 그 느낌이다. 호찜이가 물건이지만 호찌머그는 더 물건이다. 머그 자체로도 쓸모가 충분하다. 한정판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우쭐하게 만든다. 아내를 잘 둔 탓이다. 탓을 할 거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렇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레트로의 시대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과도하게 활용하는 대기업들의 생태를 보면 그저 상술에 지나지 않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 유혹은 달콤하고, 언제나 그 유혹에 넘어간다. 여기엔 특별한 목적이나 의도는 없다. 그저 인간 본연의 욕망, 과거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그리는 끌림이 자연스레 구매로 우리를 이끌었을 뿐이다.

 

 기업들의 홍보의 장이라고 충분히 의심 가능한 다음 어딘가의 카테고리. 그곳에 가면 신제품 및 한정판 제품의 정보가 시시각각 업로드된다. 물론 유용한 정보나 가십거리 들도 많다. 그중에서 이번에 아내의 시선을 끈 것은 이 제품이었다.

'델몬트 오렌지 주스 미니병 세트’

아침의 주스를 가장 선호하지만 역시 오렌지 주스의 대명사는 델몬트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가슴이 뛰었던 사람들이라면 응당 눈길이 가는 제품일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아직도 보지 않은 나조차도 가슴이 뛰었다. 하물며 250ml라니. 더군다나 한정판이라는 이야기는 내 구미를 더 끌어당겼다.

롯데와 날이 갈수록 친해지는 기분이다.

 퇴근길에 마주한 작은 택배 상자 하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유리병이기에 포장도 꼼꼼하게 잘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초록색 병뚜껑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함께 딸려온 플라스틱 상자까지 완벽했다.

꼼꼼한 포장. 마음에 든다.
초등학교 앞에서 삐약 거리던 병아리들을 보는 것만 같다. 얼른 꺼내 달라며 손짓한다.
사진은 커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스티커였다. 병에 부착되지 않고 별도로 들어 있는 스티커는 구매자가 일일이 붙여야 했다. 그러나 거기엔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 롯데에서 이 작은 크기의 음료수 병을 출시한 목적 말이다.

오렌지 농축액 17%, 250ml. 그렇다면 대략 80%는 물이다.

 그것은 바로 병의 재활용이었다. 이미 이 세트를 구매한 여러 사람들은 주스를 모두 마신 후 재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인테리어나 재사용 등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스티커가 붙어 있다면 그것만큼 불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아까워서 어떻게 딸 것인가?

스티커를 떼어내다가 행여나 조금이라도 찢어지거나 접착액이 남는다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티커를 붙이지 않고 별도로 동봉한 것은 참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배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한 번씩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주스를 마실 날을 꿈꾸지만 한정판을 몇 번 경험했음에도 첫 번째 병의 뚜껑을 따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유통기한 천년 만년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내와 아침을 함께 하며 큰마음 먹고 하나 열었다. 뭐, 맛은 오렌지 주스 맛이다.

 

 새로운 맛을 고생하며 끌어내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맛을 잘 섞어낸다면 그만큼 효율적인 재탄생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제과 업계 등에서 보이는 행보는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다만 그 시도에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참지 못하고 카트 구석구석 과자를 가득 채워 넣고야 마는 것이다.

빨리 상자를 열라며 웃음을 날린다.


 

 몽슐랭 프로젝트 1탄. 카페 노티드의 셰프들과 콜라보로 탄생한 마롱몽블랑 케이크. 진열대에 전시된 상자를 발견한 아내는 상기된 표정으로 박스를 집어 카트에 담는다.

‘케이는 묵음이야.’

 갑자기 바프가 생각나는 사이, 괜스레 그 옆에 있는 오예스 콩고물에 눈길이 간다. 계획 구매를 하자고 몇 번이나 한 다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망설임 없이 오예스 상자를 집어 들어 몽쉘 상자 곁에 조심스레 올려둔다.


빨리 열어달라고요.
TMI
저기로 열고 싶단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한 후 먼저 몽쉘 상자를 살펴보았다. 다른 것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재활용을 위해 별도로 뜯는 곳을 마련해두었다는 점. 하마터면 생각 없이 먼저 뜯을뻔했다. 뜯는 곳은 화살표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언제나 진행 방향이 헷갈린다. 물론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았다.

화살표부터 시작이다. 화살표 방향으로 뜯는 것이 아니다.
어머.
카..카와... 귀멸의 칼날 후유증이 극심하다. 한글을 사랑하자. 귀엽다.

 상자가 입을 벌리니 작고 귀여운 포장지가 나를 반긴다. 전통적인 몽쉘 포장지는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다. 이번엔 오예스 차례다.

고소한 건 알겠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케이크류 중에는 오예스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을 때 다소 칙칙한 느낌의 포장지가 기대치를 떨어트린다. 콩고물의 느낌을 살린 것은 잘 알겠지만 기존 오예스 포장지가 더 식욕을 자극하는 느낌이다.

화살표부터 시작하다. 긴장을 늦추지 말자. 여기선 화살표 방향으로 뜯어야 한다.
고소한 건 알겠는데 2
고소한 건 알겠는데 3
귀엽다. 오래 보아도 그렇다. 일부러 몽쉘을 앞에 놓은 것은 아니다.

 이제 몽쉘과 오예스를 한 접시에 담아본다. 함께 모아놓고 보니 몽쉘에 더 눈길이 간다. 손이 가는 대로 우선 몽쉘을 개봉한다. 작고 귀여운 몽쉘이 나를 반긴다. 쁘띠의 느낌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반으로 갈라보니 크림도 충실해 보인다.

 

작고 아담하다.
속도 알차다.

 그다음 오예스를 꺼내본다. 외관은 예상대로다. 코 끝을 스치는 향에 맛이 예상된다. 반으로 갈라보니 예상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겉만 봐서는 모르겠다.
고소한 건 알겠는데 4
어떻게 쌓아야 예뻐 보이지.

 그렇게 한 데 모은 후 아내와 함께 반쪽씩 맛을 보았다. 첫 번째 아내는 몽쉘, 나는 오예스였다. 잠시 가만히 접시를 들여다보던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로 궁금한 거 먼저 먹었네.”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접시에 남은 몽쉘을 먼저 집어 들었다. 이후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잘 뽑았네.”

 몽쉘이 아니라 새로운 케이크를 출시했다고 해도 괜찮은 맛이었다. 카페 노티드를 알지는 못하지만 노티드 쁘띠 몽쉘은 기억에 남을 느낌이다. 나아가 아내, 그리고 아이와 함께 카페 노티드를 방문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남은 오예스를 언제 다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앞선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생전 ‘one more thing’을 외치며 꺼냈던 맥북 에어, 백라이트조차 없던 그 노트북을 사용하기에 아직도 큰 문제가 없다. 이제는 강력한 M1 칩으로 무장한 그 노트북을 홈페이지에서만 보며 오랜 기간 동경해왔던 나에게 아내가 묻는다.

 

“나 돈 들어오는데 애플 워치 사줄까?”

 

 잠시 고민에 빠진다.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다. 사소한 일도 그렇고. 무언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가 조금 더 생각의 범위를 확장해 본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듯 이번엔 무척이나 기분 좋은 다른 대화가 이어진다. 1년 넘게 이어진 아내의 사업이 드디어 성과를 낸 것이었다. 그 성과의 첫 번째 결실이 바로 나에게 주려는 선물이었다.


 탁자 위를 오랜 시간 장식하고 있는 1세대 애플워치는 방치된 지 일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애플 워치 얘기를 꺼냈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애플 워치와 아이패드, 그리고 맥북 에어. 그리고 에어팟이 서로 자신을 택해 달라며 순위 경쟁을 벌였다. 새로 나온 아이맥까지 자신을 잊지 말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미 2019년형 16인치 맥북 프로가 있고 혼수로 산 2017년형 아이맥과 떡하니 책상 위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노트북을 추가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방치된 애플 워치 옆에 더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아이 패드 미니 1세대(액정 자가 수리 후 더는 화면이 나올지 않는)와 그 옆에 함께 방치된 아이패드 에어 1세대(액정이 깨진)가 눈에 어른거렸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가격과 옵션을 비교한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패드 프로 11인치 (3세대)였다. 매직 키보드와 애플 펜슬(2세대)까지 추가하니 맥북 에어쯤은 거뜬히 살 수 있는 가격이 되었다. 물론 이 가격이면 맥북 프로도 살 수도 있다. 아내의 결정적 한마디가 최종 구매 품목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살 때 제일 좋은 걸로 사야 나중에 후회 없다. 다시 살려면 돈 더 들어간다.”

 

 사게 되면 그동안 미뤄둔 글과 블로그에 열심히 매진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애플 공홈에 접속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선택해 본 적 없던 각인 옵션과 선물 메시지까지 입력하며 구매에 열의를 다했다.

 

 하지만 애플이 내게 보여준 서비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각각의 배송일이 상이한 것, 여기서 더 의문이 드는 것은 도착 예정일이었다. 순서대로 매직 키보드, 애플 펜슬(2세대), 그리고 아이패드였다. 그것도 매직 키보드와 아이패드의 도착 예정일 차이는 1주였다. 아이패드 기준으로 한 번에 보내주지 않는 상황도 준비되는 대로 개별 발송하는 상황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결제 이후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Apple Store: 오늘이 바로 기다리시던 그날입니다.’

 

가슴 설레는 휴대전화의 메시지 알림 후 정말로 키보드가 먼저 도착했다.

아이패드가 없으면 무용지물.
보호와 키보드의 편의는 충분히 제공한다. 하지만 아이패드만 들고 따로 쓰려면 불편도 함께 제공한다.

‘Apple Store: 오늘이 바로 기다리시던 그날입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애플 펜슬만 도착했다.

 

 

계속해서 펜을 잡고 무언가를 쓰고 싶게 만든다.
둘째를 기원하며 애플 제품 중 처음으로 새겨 본 각인. 물론 아이패드와 함께 새겼지만 애플 펜슬이 먼저 왔으니 처음.

 

‘Apple Store: 오늘이 바로 기다리시던 그날입니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을 끝낼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메시지는 퇴근 시간마저 앞당겼다. 집에 도착한 나를 반기는 택배 상자는 앞의 것들이 그랬듯이, 하지만 조금 더 큰 크기로 나를 반겼다.

 

배터리 내장 제품이라 그런지 위협적인 그림의 스티커를 붙여준다.
영롱한 외장을 보면 나도 언젠가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생각보다 가볍다.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두 번째 각인. 그마저도 매직 키보드를 붙이면 완전히 가려진다.

 생김새는 이미 기사나 홈페이지를 통해 충분히 확인한 후였지만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필름을 먼저 붙인 후 키보드를 부착하니 무게가 상당하다. 아마도 맥북에어보다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라는 생각이 든다.

M1을 이렇게라도 느껴보자.
노트북도 그렇다고 태블릿도 아닌 것 같은 애매모호한 느낌. 그리고 스페이스 바를 오른손으로만 치는 것은 안 비밀.

 일렉트로 마트를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체험해본 애플 펜슬을 직접 사용해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부드럽게 밀려 나가고 실제 펜과 큰 이질감 없는 필기감은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마도 돌을 앞둔 우리 아이는 책보다 이런 전자기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데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누군가는 종이의 종말을 예언했고 누군가는 책의 종말을 예언했지만 우리는 아직 종이를 사용하고 책을 본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패드는 확고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책을 보고 영상을 즐기며 나아가 게임까지 할 수 있는, 그것도 커다란 화면이 주는 사용감은 다른 제품과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노트북이 채워주기 어려운 부분이다. 물론 요즘은 태블릿과 노트북 일체형이 나오지만 개인적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

 

 거의 모든 애플 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생태계에서 주는 편안함에 빠져 있기에 더욱 그러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애플 키보드를 사용해 타이밍을 하고 있지만 조금의 이질감도 없다. 타건감은 애플 무선 키보드와 맥북 프로의 키보드, 그 중간쯤 되는 느낌이다. 좁은 배열이지만 오타 없이 타이밍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또한 맥 환경에 익숙한 나이기에 맥의 단축키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또 하나의 장점이다.

 

 다만 사악한 가격은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끊임없는 걸림돌이다. 그러나 애플의 장인 정신이 매년 선사하는 새로운 제품들은 언제나 내 지갑 앞에서 군침을 흘린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망설임의 끝에서 그 앞에 지갑을 열어 보이고 만다.

 

 

 

개발자를 위한 키보드.

 

 키보드에 조예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십 년 넘게 현역으로 일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결국은 취향 또는 얼마나 편안함을 주는지 정도가 선택의 이유가 될 것이다.


편안함의 문제

 

 키보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시기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기 1년 전쯤인 것 같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적은 몇 번 있었고 실제로 결심했을 때마다 이직 직전까지 갔었지만. 이유야 어쨌든 회사에 남는 선택을 했고 그즈음에 손 뼈의 통증이 심해졌다.

 책상에 댄 손바닥 끝에 힘을 주는 것이 문제였다. 마우스야 손목 받침대가 보호해 준다지만 키보드를 쓸 때는 영락 없이 통증이 찾아왔다. 이러다간 일을 그만둔 후에 글을 쓰는 취미마저 포기해야 할까 덜컥 겁이 났다. 결론은 편안한 키보드를 찾는 것. 그중에서 물망에 오른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Kinesis, 다른 하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체 공학 키보드 마우스 세트였다. 오랜 시간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독보적인 디자인과 활용도가 높아 보이는 매크로 기능이 눈길을 끌었지만 50만 원 대의 가격이 큰 걸림돌이었다. 50만 원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보드 마우스 세트를 몇 개는 더 구매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산 키보드는 퇴사 전까지 손 뼈의 통증을 줄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취향의 문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후 다시 회사에 복귀하기까지 1년의 시간이 흘렀다. 키보드는 1년을 쉬었지만 세월의 흔적은 피해 가지 못했다. 손목 부분에 묻은 이물질을 벗겨내려 갖은 시도를 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코팅이 벗겨지며 더욱 지저분해질 뿐이었다.

 같은 키보드를 다시 사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관심이 있던 기계식 키보드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Varmil의 기계식 키보드가 좋다는 의견이 우세적이었다. 그리고 마음에 든 키보드는 노르웨이의 산악 지대를 형상화했다는 Varmilo MA108M summit edition 이었다.

키보드의 링크를 보내며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꺼내보았다.

 

“이거 어때?”
"하나 사."
"그런데 이거 비싸서.

 십만 원도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20만 원을 호가하는 키보드는 말을 꺼내면서도 부담이었다. 20만 원의 값어치를 할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은 나를 완전하게,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설득시켰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여덟 시간 동안 키보드 두들기는데 좋은 거 써야지.”

 

키보드 칠 때는 타다닥 소리가 나야지. 그리고 숫자 키는 없어도 되는 거 아니야?

 

 승인이 됐으니 이제 실제 결제할 키보드를 고를 차례였다. 여러 타입을 고민했지만 스스로가 업무 중에 키보드 소리가 요란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계식 키보드를 쓰는 매력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저소음 적축은 조용한 업무 환경을 제공할 최상의 선택지였다. 그리고 맞이한 다음의 문제는 가장 큰 고민을 안겨주었다.

 텐키리스 디자인이 더 좋다고 느꼈지만 한 번씩 계산기에 숫자를 넣고 아이피를 치거나 할 때 텐 키 부분이 없다면 괜한 불편함을 초래할 것이라 생각했다. 가격 차이가 크게 나는 것도 아니었고 텐 키 부분을 별도로 사려면 그것도 꽤 비용을 치러야 했다.

 그다음은 각종 키를 극단적으로 줄인 68key가 눈길을 끌었다. 맥을 사용하며 이런저런 키 조합에 익숙해져 있지만 완전하게 새로운 형태의 키보드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결론은 익숙한 것을 선택하고 새로운 것은 중고로 체험해보자. 그것도 아니라면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하는 것이었다.


이 맛에 기계식 키보드 쓰지.

 

 꼼꼼하게 싸여 도착한 키보드의 무게는 꽤 묵직했다.

러시아 인형인 마트료시카처럼 박스 안의 박스 안의 박스를 경험하게 해준다.

박스의 감성만 따지면 애플 버금간다.
키보드로 할 수 있는 예술이 뭔지 기대하게 만든다.
추가 키 캡도 있다.
구성은 단출하다. 딱딱한 커버로 키가 눌리지 않게 보호한 점에서 뜻하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푹푹 들어가는 느낌의 타건감은 기계식 키보드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나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했지만 곧 익숙해지리라 생각했다.

멀리서 보면 노르웨이의 설원이 그려진다. 하지만 멀리서 보려는 목적으로 산 건 아니다.

 백팩에 넣어 회사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나니 벌써 다른 욕심이 샘솟는다. 개발에 열심히 매진해야겠다는 생각보다 하루빨리 다른 키보드를 몇 개 장만해서 그날 그날 바꿔가며 써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물론 그것도 아내가 다시 허락해 줘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제, 유년 시절을 떠올리려면 꽤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블리자드와의 인연을 생각해 보면 지금으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디아블로 등. 그중에서도 워크래프트는 추억의 한 축을 담당한다. 2016년에 개봉한 워크래프트 영화도 본 적이 있다. 물론 영화 내용은 조금도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WOW(World of Warcraft).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해본 적은 없다. PC 앞에 앉아야 하고 시간 조절도 어려운 MMORPG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유년 시절을 함께 PC방에서 보냈던 친구들이 점점 게임보다 술을 가까이하게 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워크래프트, 그중에서도 호드와 얼라이언스 진영의 대립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스몰월드 - 워크래프트’ 보드 게임 펀딩에 참여하게 된 계기다.

* 사실 보드 게임을 받은 건 몇 달도 더 된 일지만 육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글을 올린다.

 생애 첫 펀딩. 그것은 펀딩은 와디즈를 통해 진행되었고 주체는 만두게임즈였다. 여러 가지 펀딩 옵션이 있었지만 구성의 차이 외엔 별다를 게 없었다. 가격의 차이뿐만 아니라 구성품이나 배송 일정의 차이도 없었다. 하지만 기분상 얼리 버드 옵션을 선택했다.

 


 간간이 리워드 발송 관련 알림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일정이 두 차례 정도 지연되었다. 그렇게 펀딩에 참여한 것조차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드디어 현관문 앞에서 반가운 택배 상자를 맞이했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구성을 살펴보자.

 미리 알림을 받은 대로 오류 수정 스티커가 하나 들어 있었다. 스몰월드 보드게임에 워크래프트 컨셉을 차용했다는데 사실 스몰월드라는 보드게임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가슴이 설렌다.

 

규칙서를 보면 수학의 정석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먹먹하다. 그것도 아니면 기초 성문법.
뭐가 많다.

 

팀플레이가 가능하다지만 아내가 나와 상대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정리도 깔끔하다.
문제의 수정 포인트는 매뉴얼의 상단에 있다.
별로 감쪽같지 않지만 완벽한 위치에 정확하게 안착시켰다.

 신속하게 매뉴얼을 보며 전체 룰을 파악한 후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아내와 바로 진검 승부를 펼쳤다.

 

나는 호드, 아내는 얼라이언스를 택했다.
게임 중반에는 몇 번이나 내가 이기는 모습을 상상했다.

 한 시간 남짓 이뤄진 승부의 승자는 역시나 아내. 최근 보드 게임 맞대결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골드가 많은 자가 승리한다.
골드에서도 차지한 땅에서도 이길 수 없었다.

 내가 대적할만한 상대는 잠든 아이. 그것도 커서 초등학교 들어가서 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좋은 신발만큼 개발자에게 좋은 마우스가 필요한 이유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마우스나 키보드를 사용할 때 오른쪽 손바닥 바깥쪽 뼈를 책상에 짓누른다. 그것이 잠깐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이 프로그래머이고 취미가 글쓰기인 나에게 습관은 참기 어려운 통증을 가져다주었다.

 

 은퇴를 고민할 만큼의 통증은 점점 나를 괴롭혔다. 물론 해결책은 있었다. 손목 패드를 사용하는 것.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있었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번갈아 사용하다 보면 어느샌가 손목은 책상과 맞닿아 있다. 뒤따르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다 결국 찾아본 것이 인체공학 키보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Kinesis. 하지만 50만 원대의 사악한 가격에 마음을 접었고 합리적인 가격의 마이크로소프트의 스컬프트 라인을 선택했다.

 

 장점은 키보드의 손목 받침 부분을 높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손목이 자연스럽게 허공에 떠있게 되어 좋지 않은 습관에서 손쉽게 해방되었다. 문제는 마우스에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니 휠이 뻑뻑해지며 휠을 둘러싼 고무가 마모되었다. 급기야 휠을 돌려도 한 번씩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안을 찾다 도착한 선택지는 Apple Magic Mouse2다.

 


마우스야 네가 아무리 잘나봤자 내가 딴 거 쓰나 애플 쓰지

 맥북과 아이맥을 사용하며 트랙패드에 익숙한 나로서는 Magic mouse를 사용하며 느낀 좋은 경험을 확장하고 싶었다. 단점은 사용해야 할 환경이 윈도우라는 것. 찾아보니 이런저런 유틸을 사용하면 맥 환경에 가깝게 사용할 수 있지만 완전한 경험은 불가능했다.

 

 와이프도 허락을 했겠다, 정 안되면 집에서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주문을 강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택배가 도착했다.

 애플답게 포장은 깔끔했다. 단출한 구성과 매끈한 디자인은 여전하다. 마우스 본체, 충전 케이블, 매뉴얼이 전부다. 물리 휠이 없어 제스처로 휠 동작을 인식한다. 물론 윈도우에서는 별도 유틸 없이 뒤로 가기와 앞으로 가기 제스처가 동작하지 않지만.

 

 혹시나 충전이 필요할까 싶어 급속 충전기에 잠시 꽂은 후에 맥에 잠시 연결해 보았다. 전원만 켜도 바로 인식이 되고 심지어 앞에 충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충 상태다.

 이제 회사의 마우스를 교체할 차례이다. 연결에 필요한 블루투스 동글은 예전에 몇천 원 주고 산 제품을 이용했다. 윈도우10에서 막힘없이 연결이 잘 된다. 휠 기능 사용을 위해 부트 캠프 드라이버도 설치했다. 이질감이 있지만 적응하기 어렵진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PC를 껐다 켤 때마다 블루투스를 재 연결해 줘야 한다는 것. 내적 갈등이 시작되었지만 제스처로 사용하는 휠 기능이 주는 매력을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다. 덕분에 회사 PC는 당분간 전원 꺼질 일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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