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마불 이후

 

 부루마불을 선택하고 나서 형에게 받을 생일 선물을 고르기는 조금 더 수월해졌다. 새로운 보드게임을 찾기 위해 다른 블로그와 게임 포스트들을 들락거렸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은 워해머였다. 워해머에 대한 글과 위키를 들락날락한 후 아내에게 말했다.

 

“축복이 나오면 나중에 워해머 같이 해야겠어.”
“그게 뭔데?”
“외국에서 되게 유명한 보드게임 같은 건데. 매뉴얼이 있고 그거에 맞춰서 피규어 같은 거 사서 하는 거야.”

 

아내는 가만히 설명을 듣다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서 그거 언제쯤 할 수 있는 건데?”
“초등학생은 돼야 할걸?”

 

*작성자 주 : 현시점에서 축복이는 아직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


아그리콜라

 

 노선을 수정해 찾은 것은 농장을 운영하는 게임이었다.

 보드 게임 회사 직원들이 뽑은 보드 게임 순위 중 1위였을 것이다. 그 글에 따른 설명으로는 무슨 상도 수상했으며, 세계 대회가 있으며,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행히 이번엔 오배송 없이 택배가 잘 도착했다.

 

*작성자 주 : 1화 내용 참고

2020/04/01 - [주전부리 레시피/벨 소리가 울리면] - 땡스 기빙 it. 1화 - 부루마불 클래식

 

땡스 기빙 it. 1화 - 부루마불 클래식

벨 소리가 울리면  요즘 같아서는 각종 청구서에 가슴이 철렁할 일뿐, 가슴 뛸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벨 소리가 울리는 날에는 죽은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 뛰고야 마는 것이다. 바로 택배 박�

berrymixstreet.tistory.com

 

 아내도 나도 처음 접해보는 게임의 구성물을 잠시 넋을 놓고 살폈다. 우선 옵션으로 주문한 카드 프로텍터에 게임 카드를 하나씩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매뉴얼을 정독하며 한참 동안 게임 진행 방법을 찾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튜브에서 어떻게 하는지 찾아볼까?”
“조금만 더 읽어보자.”

1인 플레이 가능한 이유가 있다.

 

 이대로는 게임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다시 정리해야 할 판이었다. 매뉴얼을 몇 번이나 정독한 시점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유튜브에서 찾아보자.”

 

 유튜브에는 친절하게 게임 방법이 잘 설명된 영상이 있었다. 영상을 참고로 해서 2인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준비한 후 게임을 진행했다. 한 시간이 넘어서야 게임은 간신히 끝이 났다. 내 바람과는 달리 승리의 여신은 이번에도 아내에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크게 밉보인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수많은 자원과 게임에 필요한 카드.
보드게임에 점수표가 웬 말인가.
매뉴얼에는 게임 방법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분명히. 한글로.

 그 뒤로 아내는 아그리콜라를 하자는 말에 진저리를 친다. 게임을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를 패배자로 남겨 두기 위해서.’

 

 그래서 혼자서라도 나는. 이 게임에 매진할 것이다.

벨 소리가 울리면

 요즘 같아서는 각종 청구서에 가슴이 철렁할 일뿐, 가슴 뛸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벨 소리가 울리는 날에는 죽은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 뛰고야 마는 것이다. 바로 택배 박스를 손에 든 택배 기사님에 의해서 말이다. 우리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기별

 게임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생일은 타이틀을 두 개 정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없는 좋은 기회이다. 하나는 아내로부터. 하나는 형으로부터.

 

 하지만 불행하게도 올 초엔, PS4뿐만 아니라 닌텐도에도 주목할 만한 신작은 없었다. 웬만한 타이틀은 다 들고 있지만 손이 가지 않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아내의 임신으로 무언가 조금 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촌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 생일 선물 뭐 받을래?"

 

 순간 굳어 있던 두뇌는 빠르게 움직였다. 게임 타이틀을 고를 때처럼 빈틈이 없었다. 두 눈은 쉴 새 없이 집을 채워 놓을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 보드게임이 생각났다.

 

"부루마불."

 

부루마불 클래식

실종

 택배가 온다는 주말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배송 조회를 눌러본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기도 안양으로 와야 할 택배가 광주로 가고 있었다. 경기도 광주 말고, 전라도 광주 말이다. 사촌 동생에게 사진을 보낸 뒤 허탈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거 맞아?"

 

택배는 광주광역시를 향해 간다.

 사촌 동생이 전전긍긍하며 판매자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대신 구매자들의 성토장이 된 QnA 게시판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나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결혼 전, 언젠가 보냈던 명절 선물이 송장번호가 뒤바뀐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방법은 없었다. 우선 기다려보는 수밖에.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작성자 주: 송장번호가 뒤바뀌면 택배가 엉뚱한 주소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건은 제대로 간다. 배송정보만 뒤바뀌어 보일 뿐이다. 전라도 광주의 구매자는 경기도 안양으로 가는 자신의 택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기척

 그날 저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앞에 들어온 택배 상자가 하나 보였다. 눈대중으로 박스 크기를 가늠해보니 기다리던 그 택배가 맞았다. 다른 택배일 리 없었다.

이게 뭐라고 설레인단 말인가!?

 어린 시절, 집에 부루마블 클래식이 있는 친구를 그렇게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그것이 생겼다. 오늘만큼은 세상 어떤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서울 구경

 우리 부부는 바로 판을 벌였다.

부루마불 클래식의 게임 설명서
부루마불 클래식의 돈과 게임말, 건물, 황금열쇠, 땅 카드
부루마불 클래식 게임 준비 - 땅 카드 꽂는 판에 소음방지 매트가 뚫릴까봐 깐 해커스 오픽(*미안)
부루마불 게임 말 - 출발 전

 나는 세계를 돌며 각지를 매입하고 호텔을 올렸다. 아내는 씩씩대며 국내의 관광 명소를 매입하는데 그쳤다. 그것도 잠시, 일은 황금열쇠의 저주에서 시작되었다.

 

들어는 보았는가?

반액 대매출’

‘건물 유지비 지불’

*작성자 주: 반액 대매출 - 본인이 들고 있는 땅 중 가장 비싼 곳을 반값으로 판다. 건물 유지비 지불 - 본인이 들고 있는 땅의 건물에 대해 일정 비율로 금액을 지불한다. 호텔이 제일 비싸다.

 

 황금열쇠는 나에겐 반액 대매출 두 번과 수많은 호텔에 대한 건물 유지비 지불을 한 번 요구했다. 건실한 사업가인 나는 대규모 매각을 단행하며 재기를 노렸다. 아내가 들고 있던 우대권도 개의치 않았다. 처음 서울 구경을 할 때만 해도 버티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이어 두 번째 서울 구경을 할 때 생각했다.

 

‘뭐 이딴 게임이 다 있지?’

 

 나의 유년기, 군대 시절을 함께 했던 그 게임이었다. 추억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주사위를 던졌다. 내가 들고 있던 거의 모든 땅은 이미 아내의 차지가 되어있었다. 반환점을 앞에 둔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번에 서울 또 걸리면 그만하자.’
"그래"

 

 싱긋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설마 하며 주사위를 던졌다. 탁 소리를 내며 뱅그르르 돌다 멈춘 주사위는, 나에게 세 번째 서울 구경을 시켜주었다.

패배 후에 남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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