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4일 출산 당일.

 

 코로나19 덕에 마스크를 벗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차로 이동을 결정한 순간부터 모두가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뒷좌석의 아내는 진통을 반복하다가 간간이 잠에 들었다. 괜히 마음이 아렸다. 새벽 두시에 거의 다 되어서야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처음 도착한 병원, 가로등만 지키는 그곳에서 갈 길을 잃은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우선 조산사님과 아내만 먼저 본관 앞에 내려두고 나 혼자 주차장을 찾아 헤맸다. 그 새벽에 나를 안내해 줄 누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길가에 빈틈을 찾아 차를 넣고 빼기를 몇 차례. 급기야 주차금지 구역에 차를 대 놓고 시동을 껐다. 그렇게 가려다 말고 아내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다. 조산사님의 간단 명료한, 하지만 내게는 긴 설명이 이어졌다.

본관으로 들어와서 수속 밟고 2층으로 올라온 다음에 반대쪽 끝으로 와서 한층 올라오면 모자보건센터에요. 거기로 오면 돼요.

 침착하게 머릿속에 긴 문장을 되뇌며 나오는 길에 주차장 입구를 발견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다시 차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음만 조급해져서 평정심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게 주차장에 차를 밀어 넣고 나서야 산적한 문제 중 하나를 해결했다는 사실에 정신이 조금 들었다. 신분증과 카드만 챙긴 채 본관을 찾아 달렸다.


 본관 원무과에 도착해보니 이미 수속은 조산사님이 대신 진행해 주신 후였다. 입원 수속을 밟아야 하니 가서 주는 서류를 받아 오면 된다고 했다.

어떻게 가면 되나요?

 노파심에 내가 가야 하는 길을 다시 물었고 대답은 간결했다.

2층으로 올라간 다음에 반대쪽 끝으로 가서 한층 올라가시면 됩니다.”

 같은 설명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간간이 비상등 불빛만 비추고 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달렸다. 진통 중인데 이 길을 어떻게 갔을까, 무슨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까. 마음이 급한 와중에도 처음 와본 이곳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애썼다.

 

 길의 끝에서 발견한 계단으로 올라가니 굳게 닫힌 세 개의 문만 나를 마주했다. 몇 번을 아내에게 전화했지만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며 그 앞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이곳 말고는 갈 수 있는데도 없어 보였다. 잘못 온 건 아닐까 층 안내도를 몇 번이나 확인했을까 그때 굳게 닫힌 문 중 하나가 열렸다.

산모는 지금 검사 중이에요. 일단 이거 가지고 1층에 원무과 가셔서 입원 수속 먼저 밟고 오세요.

 원무과에 다녀온 뒤 또다시 기다림. 3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때야 차에 실어둔 짐을 찾아왔다. 아내가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던 촬영 장비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렇게 3층 의자에 앉아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다시 문이 열렸다.

“이제 들어오시면 돼요.”

 

 간호사가 먼저 입원과 진료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다.

지금 산모 고열 때문에 아이도 위험할 수 있어서 바로 제왕 절개 수술 진행할 거예요.

 병원에 오자마자 확인한 아내의 체온은 병원으로 출발하기 전보다 조금 더 올라 있었다.

'38.4'

그리고 코로나가 의심되는 상황이라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수술 후에 1인실을 써야 돼요.

 설명을 듣는 사이 검사를 마친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밝은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수술실에 누워 수술 준비가 진행되며 대화를 나눌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조산사님은 수술 준비가 시작되자 한마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나셨다.

별일 없을 거예요. 기도할게요.

 수술 대기실에서 대화 내내 찾아오는 진통에 아내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손을 잡아주며 했던 말을 또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호흡해야지.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노력했다. 그리고 수술실로 향하기 전 손바닥에 하트 하나 그려주는 것으로 많은 말을 대신했다.

잘하고 와.

 


새벽 3시 30분.

 

 수술은 30분 후 시작이었다. 그렇게 수술실로 향하는 뒷모습을 지켜본 후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가족 분만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런저런 안내를 받고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몇 년을 찾지 않은 신을 찾아 아내와 태어날 아이의 안녕을 비는 것. 그것이 그 시간 내게 허락된 유일한 행위였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머릿속을 채운 여러 생각들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의 옷가지를 정리한 후 소파에 앉아 문을 마주했다.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잠들 수도 없었다. 잠이 들어서는 안됐다.

 

 창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족 중 누구에게라도 연락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 아내의 수술도 시작하기 전이었다. 물끄러미 흘러가는 시간만 바라보던 나는 휴대폰의 메모 앱을 열었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며칠 간의 기억을 더듬으며 지금까지 함께 겪은 모든 일을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보호자님.

 

새벽 4시 10분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내 눈앞에 아주 작고 여린 아이가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쌔근거리며 울지도 않는 아이.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내게 간호사가 간단한 설명을 했다.

4시 정각에 건강하게 잘 태어났고요. 기본적인 검사는 문제 없는데 산모가 열이 난 거 때문에 추가로 검사가 진행될 거예요. 그건 신생아실에서 따로 연락 갈 거예요.

산모는 괜찮나요?

이제 봉합 시작했을 거고 끝나면 회복실로 갈 거예요. 아버님. 사진 하나 찍으셔야죠.

 그제야 정신이 들어서 사진을 하나 찍었다. 이어 동영상을 찍기 시작하는데 안도감이 밀려왔다.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간신히 눈물을 참아내며 입을 벌렸다.

이제 가셔도 돼요.

 간호사들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문을 닫고 돌아간 직후 소파에 앉아 입을 막고 오열을 했다. 건강하게 잘 태어난 아기에 대한 고마움. 진통에 몸을 비틀던 아내의 모습에 대한 미안함. 처음부터 고민 없이 병원에서 출산을 계획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할 필요 없었던 고생을 시키고 아내와 아기를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얼마나 흐느꼈을까,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찍어두었던 사진, 그리고 동영상을 돌려보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조그맣고 작은 아기가 아내 뱃속에 있었다니. 몇 번이고 동영상을 돌려보는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신생아 중환자실인데요.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고요. 격리 후에 음성 판정 나오면 오후쯤에는 신생아 실로 이동할 거예요. 그리고 신생아 출산 검사는 문제없고요. 그런데 산모 백혈구 수치도 높았고 혈액 배양 검사를 해야 해서 아기는 5일 정도 입원해야 할 거예요.

 다른 말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문제없다는 말 외에는. ‘다행이다’라는 말을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아내가 회복실에서 돌아온 후에야 그 말을 멈출 수 있었다. 돌아온 아내에게 한 마디 말로 모든 말을 대신했다.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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