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즐기는 아빠들이
남자아이가 자식으로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꿈.
아이가 크면 함께 플스 패드를 잡고
게임 생활을 즐겨야지.

나는 그보다 멀리를 내다보며,
'손가락 관절염이 오기 전까지
패드를 손에서 놓지 않겠다'
수없이 되뇐다.

물론 그 어떤 말도
생일을 무기로 구매에 이른 PS VR2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는다.


1. 천운 혹은 마케팅에 속은 자

 PS4 Pro 구매 대란부터 PS5 구매에 이르기까지 언제부터인가 구매권을 추첨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운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혹은 지출의 신이 나와 함께 하고 있던 것일 수도.

 

 PS VR2도 다르지 않았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SONY 마케팅의 노예가 된 나는 출시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아이가 걷기 시작했고 거실의 모든 게이밍 기기는 방안의 책상 위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TV로 즐기던 게임을 작디작은 모니터로 하려다 보니 그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웠나 보다.

 

 물론 시간이 지나 아이가 자신의 장난감에 집중하기 시작하며 일부 기기를 거실로 옮겼다. 그렇게 육아와 일 사이의 틈에 게임을 채워 넣던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아내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VR2 나온다는데 이걸로 게임하면 TV도 필요 없고 내 생일 선물로 사면 어떨까.”

“그래?”

 

아내의 대답이 이어진 그 순간, 나의 오감은 어느 때보다 민감했고 두뇌는 AI처럼 빠르게 말의 톤과 표정을 분석하고 있었다.

 

“근데 좀 비쌀 거 같긴 한데.”
“뭐 일한다고 고생하는데. 그리고 난 TV도 잘 안 보고 어차피 거실에서 TV를 없앴으면 하니까.”

 

최근에 큰 잘못을 했는지 곰곰이 지난 나의 하루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아니면 아내가 원하는 큰 무언가가 있었을까?

당첨이라는데 출시일을 지나서 보니 온라인에서 구매 가능한 걸 보니 예상보다 사전 구매가 적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구매권 추첨 일이 되어 구매권 추첨에 성공하고 구매에 이르기까지,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다만 정말로 거실에서 TV를 치워버리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가 있었으리라 어림 짐작할 뿐이다.

언제 오는 겁니까
 

 

2. 조상님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는데

아침부터 이런 연락은 설레게 한다.

 요즘 아이가 택배 상자를 보면 공룡알이 들어 있다면서 먼저 뜯는 통에 택배가 도착한다는 알림을 받은 순간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밀린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뤄두고 퇴근을 선택한 나를 위해 아내는 아이의 손길로부터 택배 상자를 지켜주었다.

실물 영접.
 

 기대에 부풀어 택배 상자에서 VR2 박스를 꺼내 올린 순간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애플 급의 감성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이전 플스 포장들에서 느껴온 그 기분 그대로를 느꼈다. 싸구려 포장. 봉인 씰도 아닌 박스테이프 같은 테이프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제품을 지켜주는 박스 내부는 여전히 몇 만 원짜리 제품의 포장인 듯 싸구려 티가 넘쳤다. VR2 기기와 새 패드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SONY의 커다란 선물이었다.

봉인 씰부터 원가 절감의 흔적이 느껴진다.
 
호라이즌이라 참는다.
박스도 원가절감에 충실한 게 느껴진다.
문제의 길고 긴 USB C 연결선이 보인다. 하지만 실 플레이 시에는 거의 신경 쓰지 못할 정도다.
플스 여정 처음으로 받아본 디지털 구매 쿠폰.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구매한 것에 만족.

 그래도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단순히 박스 하나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플스에 VR2를 연결하고 ‘콜 오브 마운틴’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플스4에서 플스4 Pro로 이전, 그리고 플스4 Pro에서 플스 5로의 이전이 그러했듯 모든 과정이 쉬웠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그냥 꽂고 켜면 TV 화면에서 가이드 해준다.
 
드디어 시작이다.

3. 멀미와 인지부조화, 그리고 부작용

VR2 기기를 착용하고 눈앞에 처음 나타난 화면을 마주했을 때 나의 반응은 이랬다.

‘음…’

하지만 이내 내 반응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오…’

 게임을 위한 공간 인식을 위한 과정은 이전 다른 VR 기기를 접해본 적 없는 내게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임 다운로드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고 그 사이 VR을 사용해 잠시 ‘넷플릭스’와 ‘메탈슬러그’로 시간을 보냈다.

 

 처음 VR을 출시했을 때 Sony에서 말했던 홀로 영화관 가운데 앉은 기분, 딱 그대로였다. 100인치 정도 되는 스크린이 눈앞에 있었고 그대로도 훌륭하다 생각했다. 이어 게임 다운로드가 끝나고 ‘콜 오브 마운틴’의 세계로 떠난 순간 다시 한번 나의 반응은 달라졌다.

‘와…’

 평소에 생각해왔던 VR이라면 이래야지 했던 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소드 아트 온라인’, 아니면 ‘레디 플레이어 원’의 현실판이었다. 네모난 화면은 없었다. 시야 전체를 가득 채운 게임의 세계만 있었다. 완전한 호라이즌 그 자체였다.

거실에는 아들이 깔아 놓은 장애물이 많다. 조심해야 한다. 최초 플레이 후 플스 본체는 다시 방으로.

 걷고 벽을 타고 오르는 동안 뇌는 분명하게 현실에서 응당 그래야만 하는 느낌을 전달해 주었다.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시각 정보와 운동 정보의 불일치는 곧 내게 멀미를 선사해 주었다. 멀미 때문에 FPS 게임은 손도 대지 않는 나에게 이건 너무나 커다란 장벽이었다. 메슥거리는 속 때문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

 그러니 게임 속 화면의 나도 함께 주저앉는다. 그대로 바닥을 쓸어봤다. 속이 메슥거리는 상황에서도 감탄사를 멈추지 못했다. 게임 내 여러 요소는 고개를 끄덕이게 할만했다.

 

 그리고 멀미와 인지부조화를 뛰어넘는 부작용이 남았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실제와는 다른 인지 상태에 적응하려고 했던 뇌는 이제 다른 상황을 직면했다. 현실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 움직인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 어린 시절 트램펄린을 한참 타고 땅에 내려왔을 때 땅이 발에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늘 그래왔듯 멀미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자연스레 플레이 타임은 늘어날 것이다. 고작 멀미와 인지부조화, 그리고 부작용 때문에 이 새로운 세계의 탐험을 멈추기엔 모든 것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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