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3D 프린터로 휴지통 하나 뽑아줄 수 있어? 작은 거면 되는데. 옆에 두고 아기 면봉이나 이런 거 버리게. 오래 걸리면 하지 말고.”
“금방 해줄게.”

 

 인생사 모든 방면에서 그놈의 금방은 한 번도 금방인 적이 없다. 며칠을 미루다가 구글에서 쓸만한 디자인을 찾아보았다. 최근 깨달은 사실이지만 어차피 판매 목적이 아니고 우리 집에서만 쓸 것이기 때문에 무슨 디자인을 도용하든 상관이 없다는 것.

 

 애플 로고를 어디다 하나 넣을까 생각했지만 휴지통 하나 뽑는데 그런 정성을 쏟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오픈형의 작은 휴지통을 하나 발견했고 그것보다 더 작은 사이즈로 드로잉을 시작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드로잉을 시작하기 전 아내가 잠시 방에 들러 한마디를 던지고 간다.

 

“하얀색으로 하는데 빨간색으로 포인트 주면 좋겠다. 우리 빨간색도 있으니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발주처의 요구 사항은 늘 명확하게 문서로 상세하게 받아두어야 한다.


출력하기 위해 사용한 프로그램 및 3D 프린터의 정보는 아래와 같다.

· 드로잉 : Autodesk Fusion 360

· 슬라이싱 : Ultimaker Cura 4.6.1

· 출력 : Ender 5-plus

 

작고 귀여운 뚜껑 없는 형태의 휴지통을 위아래 분리한 디자인으로 드로잉 했다.

 

Cura를 통해 슬라이싱 한 다음.

출력을 시작했다. 출력은 대략 위아래 전체 9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1mm 오차로 결합이 안 되는 것을 부수기 직전까지 힘을 줘서 간신히 끼워 넣었다. 1mm 오차 때문에 몇 시간을 기다려 다시 뽑고 싶지 않았다. 조립을 마친 뒤 아내에게 진상하자 아내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한다.

 

"정말 귀엽다. 역시 빨간색으로 포인트 주길 잘했지?”

 

실제 사용 중인 모습이다.
침대 머리맡에 놓아도 잘 어울린다.
주전부리 모음 옆에 두어도 좋다.
PC 앞에 두어도 위화감 없다.
아이폰 11Pro Max도 쏙 들어간다.
주방에 두면 더 귀엽다.
귀여운 철제 케이스도 쏙 들어간다.

 

 

 

나 때는 말이야.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스마트폰의 물결이 시작되고 있었다. 옴니아가 아이폰의 대항마로 등장했을 즈음 말이다. 그때만 해도 개발 보드 같은 것은 포럼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요즘은 아두이노, 라즈베리파이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개발 보드들이 있으니 참 편리한 세상이 아닌가 한다. 적은 비용, 조금의 시간, 조금의 열정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개발자라면 개발자, 그것도 아니라면 회사원으로 10년. 드디어 내 손으로 무언가 만들 결심을 했다. 단순한 토이 프로젝트로 끝내고 싶진 않았다. 모든 토이 프로젝트 진행자들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제품화를 염두에 두고 단가에 신경을 좀 써봤다. 실제 제품화를 했을 때 팔릴지 알 수는 없지만. 프로젝트는 다음의 순서로 진행했다. 전통적인 개발 순서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보드 선택

●제품 컨셉 구상

●사양 정의

●구현

●제품 디자인

●제작 및 시연


보드 선택

아두이노 공식 홈페이지 캡처

 선택은 아두이노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예전에 UDP 통신으로 릴레이 원격제어 기능을 구현해 본 경험이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라즈베리파이며 기타 등등 여러 파생 보드도 있지만 아두이노만큼 저렴하지 않다. 또한 아두이노에 비해 고사양이다. 몸 푼다는 생각으로 간단하게 시작해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 제품 컨셉 구상

엄청난 프로젝트들이 많다.

 유튜브와 구글에서 어떤 아두이노 프로젝트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많다. 엄청 많다. 해외에도 많다. 심지어 교육용 키트 튜토리얼에서도 대부분의 센서 연결 방법을 다룬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들려주면 반응하는 무드 등을 만들어 보자.

 청승 떨기 좋아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DIY 제품이었다. 유튜브와 구글에서는 비슷한 컨셉의 제품이나 프로젝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무드 등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있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 사양 정의

 무드 등 제작을 위해 필요한 기능은 세 가지였다. LED 제어, 음향 음역대 분리를 위한 마이크. 센서 총 2개, 아두이노 그리고 케이스면 무드 등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단순한 무드 등이라면 아두이노 사는 비용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아두이노 Mega 2560
LED 보드 : WS2812B 네오픽셀
마이크 : S235 MAX4466

 


● 구현

 실제 구현한 코드는 기록하지 않는다. 라이브러리 적용 방법 및 예제 코드는 다른 블로그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다른 블로그의 예제를 참조해서 기능을 구현했다. 구현은 다음 순서로 진행했다. 터치 제어는 구현 중에 기능에서 제외했다.

 

1. LED 제어

 

사용 라이브러리 : Adafruit_NeoPixel

 

PWM 출력에 따라 LED 어레이를 제어할 수 있다. 처음엔 원형 타입의 WS2812B 보드를 구매했다. 실제 구현 및 컨셉 설계 시 막대 타입으로 WS2812B 보드를 추가 구매했다.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꽤나 어려운 작업이 되었을 것이다. 음향 음역대에 따라 반응하도록 할 것이라 전체 8개 LED에 대해 점등 소등 정도만 확인했다.


2. 음향 음역대 분리

 

사용 라이브러리 : arduinoFFT

 

마이크로 입력된 신호를 analog 채널을 통해 아두이노로 전달한다. 음향을 대역 별로 분리해 시리얼을 통해 출력되는 것을 확인했다. 수정할 부분이 없어 기본 라이브러리에서 샘플링만 조정했다.


3. 음향에 따른 LED 제어

 

LED가 많았으면 대역별로 일일이 LED를 제어했겠지만 허락된 LED는 8개뿐이었다. 그래서 대역을 구간별로 나눠서 각 LED가 반응하도록 구현했다. 클럽 조명처럼 현란하지 않도록 점등과 소등을 부드럽게 처리했다. 무드 등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 제품 디자인

 무드 등의 소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집에 있는 모든 재료를 시험해보고 일대 전등 가게와 이케아를 돌아본 후에야 소재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3D 프린터가 간절히 필요했다. 하지만 집에 남은 강화 마루 판자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방망이 깎는 노인’이 떠올랐다.

밥 아저씨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 제작 및 시연

30cm 자의 영역은 30cm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은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

 보드 치수와 실제 조립을 고려해서 설계 도면을 그렸다. 30cm 자와 버니어 캘리퍼스면 충분했다. 스티브 잡스가 ‘손가락이 최고의 스타일러스’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손은 위대한 도구이다. 무드 등을 완성한 후 아내를 불렀다.

“오, 생각보다 괜찮다.”

생각보다.

 

¿무드등 동작 영상

 

¿무드등 제작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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