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입
기억에 봄은 요란했다. 어딜 가든 꽃보다 사람이 많았다. 벚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면 용케 알아채고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래서, 늘 만개하기 전에 꽃구경을 나섰다.
이번엔 무슨 조바심이 났는지 스스로를 채근했다. 이른 볕에 싹을 틔우는 식물처럼 기지개를 켰다. 바람이 제법 쌀쌀했지만 오랜만의 콧바람이 싫지는 않았다. 이제는 필수품이 된 마스크 사이로 스미는 봄바람이 향긋했다. 오리 두 마리는 사이좋게 삼막천을 제 집 삼아 잠을 자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뒤로 돌아간 고개를 보고 의구심이 든 나는 함께 걷던 아내에게 속삭였다. 누가 들을 세라.
“죽은 건가? 자고 있는 거겠지?”
“자고 있는 거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걸어오던 부부가 잠시 길을 멈췄다. 그리고 아저씨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 오리 죽었나 봐!”
갈림길
많은 것을 놓치며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안교 끝에 걸린 개나리며 미처 피지 못한 벚꽃도. 지척에 널려 있지만 함께 할 여유는 없었다.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에 빠져 지낼 시간은 많았다. 흐르는 물에 비친 아파트가 내 모습 같기도 했다. 주위의 풍파에 형체를 잃어버린 그 모습이.
괜스레 싱숭생숭한 마음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탁 트인 산책로를 보니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나리는 이미 온 대지를 노랗게 물들였다. 시원하게 흐르는 천은 그 주변을 가로질렀다. 새들은 집이라도 짓는지 분주하게 날개를 퍼덕였다.
어느덧 갈림길을 마주했다. 오늘은 며칠간 가던 충훈부 쪽이 아닌 양명고 쪽으로 향했다. 가끔은 다른 길에서 좋은 것들을 마주할지 모르니.
봄
더 넓게 퍼진 물줄기 주위로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아직 몸을 웅크린 꽃잎들도 있었다. 햇빛이 드는 곳은 몸을 활짝 편 것도 있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그 길에서 저희들끼리 신이 나 있었다. 도란도란 누가 더 예쁜가 경연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걷다가 보면 놓치기 싫은 순간을 마주한다. 손 아귀에 움켜쥐고 어딘가에 묶어두고 싶기도 하다. 그런 건 매년 찾아와도 여간 싫지가 않다. 우리가 발을 디딘 곳곳에 남은 추억처럼. 이 계절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걷다가 보면.
¿사진 정보
¿산책하며 찍은 영상 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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