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이 늘 나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 삶에 자리 잡는 것을 탄생이라고 부른다. 탄생과 탄생 사이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그것을 우리는 한정판이라 칭한다.

 이미 한정판 역사, 그리고 겨울만 오면 생각 나는 호빵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호찜이. 그 뒤를 이을 호찌머그의 소식을 들은 것은 아내와의 대화에서였다.

 

“삼립에서 또 호빵 굿즈 나왔대. 오빠가 좋아할 걸?”
“그래?”
“좋아할 거 같아서 벌써 샀어.”

그렇다. 나이가 먹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서도 아직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이 좋다. 택배를 마주하고 나서 주체할 수 없는 나의 심장은 아직, 그 언젠가 유년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꾸 이렇게 굿즈를 만들어 낼거면 월급 좀 올려달라고 누가 이야기 좀 해줬으면.

 박스를 뜯자마자 독특한 상자 포장이 눈에 들어온다. 프릳츠와의 콜라보란다. 찾아보니 레트로계에서는 꽤나 이름을 날리는 브랜드였다.

야채 호빵이 제일 좋다.
이런 걸 기다려왔단 말이다.
그래. 너도 호찌머그를 들고 있구나.

 지난번 호찜이 때와 마찬가지로 호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호빵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곁에 있는 머그에 집중했다. 엄지를 치켜든 물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귀여움은 어서 빨리 호빵을 얹어 달라며 손짓한다. 그렇다면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홀린 듯 호빵을 꺼낸다.

호빵 하나 누일 아늑한 공간이다.
하나 남은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에디션, 호찜이, 호찌머그.
이제 호빵을 돌리기 위해 두번 수고할 필요가 없어졌다.
 

 단팥호빵을 좋아하지 않지만 시작은 단팥호빵이 인지상정이다. 호찜이와 호찌머그에 나란히 호빵을 올린 후 전자레인지에 넣어본다. 찬바람을 맞은 후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는 듯, 호빵이 그러하다. 온몸에서 김을 내뿜으며 어서 자신을 들어 올리라고 유혹한다. 그러면 나는 유혹을 못 이기는 척 또 어리석게 손을 뻗는다.

 
찜기의 과거와 현재를 보는 것 같다.

 

 

아, 뜨겁다.


 벌써 스무 해를 넘게 호빵을 먹어왔음에도 갓 꺼낸 호빵이 뜨겁다는 사실을 매번 망각한다.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것은 손이다.
그래서 매년 겨울 미안하다.

이제 갓 꺼낸 호빵이 뜨겁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안다. 적어도 올 겨울 안에는.
반드시 호호 불어야만 한다.

 호빵은 맛있다. 찜기에서 바로 꺼낸 그 느낌이다. 호찜이가 물건이지만 호찌머그는 더 물건이다. 머그 자체로도 쓸모가 충분하다. 한정판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우쭐하게 만든다. 아내를 잘 둔 탓이다. 탓을 할 거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렇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레트로의 시대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과도하게 활용하는 대기업들의 생태를 보면 그저 상술에 지나지 않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 유혹은 달콤하고, 언제나 그 유혹에 넘어간다. 여기엔 특별한 목적이나 의도는 없다. 그저 인간 본연의 욕망, 과거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그리는 끌림이 자연스레 구매로 우리를 이끌었을 뿐이다.

 

 기업들의 홍보의 장이라고 충분히 의심 가능한 다음 어딘가의 카테고리. 그곳에 가면 신제품 및 한정판 제품의 정보가 시시각각 업로드된다. 물론 유용한 정보나 가십거리 들도 많다. 그중에서 이번에 아내의 시선을 끈 것은 이 제품이었다.

'델몬트 오렌지 주스 미니병 세트’

아침의 주스를 가장 선호하지만 역시 오렌지 주스의 대명사는 델몬트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가슴이 뛰었던 사람들이라면 응당 눈길이 가는 제품일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아직도 보지 않은 나조차도 가슴이 뛰었다. 하물며 250ml라니. 더군다나 한정판이라는 이야기는 내 구미를 더 끌어당겼다.

롯데와 날이 갈수록 친해지는 기분이다.

 퇴근길에 마주한 작은 택배 상자 하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유리병이기에 포장도 꼼꼼하게 잘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초록색 병뚜껑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함께 딸려온 플라스틱 상자까지 완벽했다.

꼼꼼한 포장. 마음에 든다.
초등학교 앞에서 삐약 거리던 병아리들을 보는 것만 같다. 얼른 꺼내 달라며 손짓한다.
사진은 커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스티커였다. 병에 부착되지 않고 별도로 들어 있는 스티커는 구매자가 일일이 붙여야 했다. 그러나 거기엔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 롯데에서 이 작은 크기의 음료수 병을 출시한 목적 말이다.

오렌지 농축액 17%, 250ml. 그렇다면 대략 80%는 물이다.

 그것은 바로 병의 재활용이었다. 이미 이 세트를 구매한 여러 사람들은 주스를 모두 마신 후 재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인테리어나 재사용 등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스티커가 붙어 있다면 그것만큼 불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아까워서 어떻게 딸 것인가?

스티커를 떼어내다가 행여나 조금이라도 찢어지거나 접착액이 남는다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티커를 붙이지 않고 별도로 동봉한 것은 참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배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한 번씩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주스를 마실 날을 꿈꾸지만 한정판을 몇 번 경험했음에도 첫 번째 병의 뚜껑을 따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유통기한 천년 만년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내와 아침을 함께 하며 큰마음 먹고 하나 열었다. 뭐, 맛은 오렌지 주스 맛이다.

콜라보와 한정판.

 이 두 단어가 주는 사전적 의미와 시장의 해석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례로 삼양과 진로가 콜라보 한 김치 불닭볶음면은 봉지에 두꺼비 그림이 들어갔다는 것 외엔 개인적으로 어떤 메리트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은품으로 레트로 소주잔이나 끼어줬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다른 예로 오뚜기에서 나왔던 오동통면 한정판이 있었다. 경쟁사 대비 다시마를 하나 더 넣은 전략과 매스컴의 홍보 효과를 등에 업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한정판이 출시된 지 꽤 오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마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이언과 진라면의 콜라보

신난다.

 카카오와 진라면의 콜라보 작품인 라면기가 출시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아내를 통해서였다. 기사보다 빠른 정보의 출처는 다음. 판매 품목은 라면기, 컵라면 타이머, 젓가락, 마우스패드, 노트와 펜 세트. 총 다섯 종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라면기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콜라보는 환영이다.

 자정이 지나 판매 예정일이 되자 카카오 선물하기에서 검색을 해봤지만 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오전 9시나 되어야 풀리겠거니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전 8시쯤 다시 들어가 보니 구매가 가능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쓸 요량으로 두 개를 구매한 후 고민에 빠졌다.

'사은품인 진라면 5개는 어디 있단 말인가?'

 재빠르게 기사를 검색해본 결과 사은품은 카카오 프렌즈샵에서만 제공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침착하게 프렌즈샵에 접속해 라면기를 구매하고 사은품까지 확인한 후에 선물하기의 결제를 취소했다. 이후 오전 9시 24분에 카카오프렌즈에서 알림이 하나 왔다.

아마도 품절되지 않은 다른 제품들을 마저 팔기 위해 알림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에 링크를 타고 들어갔더니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전부 판매 개시를 기다리다가 알림을 받고 구매를 시도하러 달려온 사람들이다. 이미 한 시간 전에는 품절되었을 것인데.


이유야 어쨌든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쓸데없는 과대 포장의 나쁜 예.
적절한 포장과 배치의 좋은 예.

 

순한맛은 안 먹어요.
매운맛은 먹어요.
어서 라면을 넣어 달라고 유혹한다.
신라면 골수 팬이지만 이제는 진라면으로 넘어가도 될 정도의 맛과 깊이를 자랑한다.

 실제 사용할 요량으로 샀으니 사재기는 아니다. 다시 팔 생각도 없다. 그런데 한정판 굿즈라고 팔아 놓고 카카오프렌즈에서는 추가 생산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도대체 한정판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요즘 들어 거의 하루에 한 번은 택배가 온다. 한 번 이상 오는 날도 허다하다. 코로나의 영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영향이 더 큰 듯하다. 대부분의 택배는 내용물을 알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게 뭐야?”

“일단 열어 보면 알아.”

 

 아내는 해맑은 얼굴로 택배 박스를 뜯는다.

“삼립호빵?”

 무언가를 산다고 하면 사지 말라고 했던 적은 없지만, 유난히 신경 쓴 포장 박스에 괜스레 의구심이 일었다. 곰곰이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놓친 부분이 없는지 되짚었다.

‘호빵만 먹으면 되는 걸 혹시 충동구매를 한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를 두고 신이 나 박스를 여는 아내. 아이 때문에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아내가 무엇을 들고 꺼내서 보여준다.

 

“그게 뭐야?”
“여기다가 호빵 쪄 먹는 거야. 이거 한정판인데 나 사고 품절. 대박이지?”

 

 대단한 건 알고 결혼했지만 언제 봐도 대단한 여자다. PS4 대란이 일었을 때도, 괄도네넴띤 한정판 대란이 일었을 때도, 마스크 대란이 일었을 때도 그 어려운 걸 아내는 묵묵히 해냈다. 아 그리고, 최근 닌텐도 스위치 대란에서도. 특히 이런 한정판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립호빵 호찜이 굿즈 에디션’

 

 내용물은 전체 단팥 호빵 6개, 야채 호빵 3개, 피자 호빵 3개였다. 그리고 호찜이. 호빵의 맛이야 일 평생을 먹어 왔는데 궁금해할 것이 없었다. 오로지 나의 주 관심사는 호찜이였다.

 

 육아 때문에 정신없던 날이 며칠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상자를 다시 열었다. 왜 단팥 호빵과 야채 호빵이 반대로 들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랜 경험에 의존해 야채 호빵을 찾아냈다. 이상하게 아직도 단팥 호빵에는 손이 안 간다.

 

 아는 사람은 안다. 사진을 자세히 봐도 알 수 있지만 왼쪽에 야채, 오른쪽에 단팥이 들어있다. 그리고 호찜이를 사용해 호빵을 쪄냈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1. 아래쪽의 물통에 물을 조금 넣는다.

2. 하얀색 채반 위에 호빵을 하나 올린다.

3. 뚜껑을 닫고 전자레인지에 1분 돌린다.

 

 그렇게 데워 낸 호빵은 코흘리개 시절에 슈퍼 앞의 찜기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던 딱 그 맛이었다.

이로서 월동 준비는 끝났다.

 

*전체 개봉기 및 실 사용기는 아래 영상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s://youtu.be/ntdPI4HI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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