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와 한정판.

 이 두 단어가 주는 사전적 의미와 시장의 해석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례로 삼양과 진로가 콜라보 한 김치 불닭볶음면은 봉지에 두꺼비 그림이 들어갔다는 것 외엔 개인적으로 어떤 메리트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은품으로 레트로 소주잔이나 끼어줬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다른 예로 오뚜기에서 나왔던 오동통면 한정판이 있었다. 경쟁사 대비 다시마를 하나 더 넣은 전략과 매스컴의 홍보 효과를 등에 업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한정판이 출시된 지 꽤 오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마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이언과 진라면의 콜라보

신난다.

 카카오와 진라면의 콜라보 작품인 라면기가 출시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아내를 통해서였다. 기사보다 빠른 정보의 출처는 다음. 판매 품목은 라면기, 컵라면 타이머, 젓가락, 마우스패드, 노트와 펜 세트. 총 다섯 종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라면기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콜라보는 환영이다.

 자정이 지나 판매 예정일이 되자 카카오 선물하기에서 검색을 해봤지만 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오전 9시나 되어야 풀리겠거니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전 8시쯤 다시 들어가 보니 구매가 가능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쓸 요량으로 두 개를 구매한 후 고민에 빠졌다.

'사은품인 진라면 5개는 어디 있단 말인가?'

 재빠르게 기사를 검색해본 결과 사은품은 카카오 프렌즈샵에서만 제공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침착하게 프렌즈샵에 접속해 라면기를 구매하고 사은품까지 확인한 후에 선물하기의 결제를 취소했다. 이후 오전 9시 24분에 카카오프렌즈에서 알림이 하나 왔다.

아마도 품절되지 않은 다른 제품들을 마저 팔기 위해 알림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에 링크를 타고 들어갔더니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전부 판매 개시를 기다리다가 알림을 받고 구매를 시도하러 달려온 사람들이다. 이미 한 시간 전에는 품절되었을 것인데.


이유야 어쨌든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쓸데없는 과대 포장의 나쁜 예.
적절한 포장과 배치의 좋은 예.

 

순한맛은 안 먹어요.
매운맛은 먹어요.
어서 라면을 넣어 달라고 유혹한다.
신라면 골수 팬이지만 이제는 진라면으로 넘어가도 될 정도의 맛과 깊이를 자랑한다.

 실제 사용할 요량으로 샀으니 사재기는 아니다. 다시 팔 생각도 없다. 그런데 한정판 굿즈라고 팔아 놓고 카카오프렌즈에서는 추가 생산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도대체 한정판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쏘는 맛과 매운맛. 그중에서 매운맛이 더 중독성이 높고 관심도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맥주, 탄산수, 탄산음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용수에 탄산이 들어간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해본다.

 

 맵지 않은 맛의 순한 음식을 떠올려보자. 입맛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 제안이다.

 

 김빠진 맥주. 감이 오지 않는가? 김빠진 콜라. 김빠진 사이다는 어떠한가? 그렇다. 김빠진, 탄산이 없는 음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이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한 내가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시장에는 다양한 탄산음료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스프라이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간혹 스프라이트가 없을 때는 사이다를 선택한다. 콜라는 태가 어두침침하고 시커먼 것이 어쩐지 이가 썩는 느낌이라 꺼림칙한 측면이 있다. 물론 배다른 민족에서 종종 가져다주는 콜라는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마신다.

 

*작성자 주 - 오타는 아니다. 게르만 민족이 운영하는 딜리버리 히어로가 곧 배달의 민족을 인수할 예정이고 그렇게 된다면 실제로 호칭은 저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육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아내가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살 수 없다. 하하 :D

사이다, BTS 한정판이라는데 이거 사줄까?

 

 냉장고에 쌓여 있는 탄산이 얼마나 되는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최근에 무언가 잘못한 일은 없는지 다시 한번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나서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

 하루가 멀다 하고 도착하는 택배 박스들 사이에 꽤 무게가 나가는 박스 하나가 끼어 있었다. 박스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무심코 흘려보낸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BTS 그리고 ARMY.

내가 아는 아미는 그 army 하나였는데.

 작고 귀여운 칠성사이다 70주년 기념 BTS 크리스마스 한정판 미니병 세트. 상자에만 스티커 하나 달랑 붙여 놓을 것이 아니라 굿즈라도 조금 넣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감히 우리 오빠들을 삐뚤게 붙여놔?

 문제는 한정판이라는 족쇄가 병뚜껑엔 손도 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어차피 안에 든 사이다 맛이 다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행인 것은 아내가 사이다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

아이폰 11Pro Max 만한 크기다. 150ml. 이 정도면 두 개는 들이켜야 한다.

 글을 마치며,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엔 뚜껑을 꼭 따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더 둔다고 와인처럼 숙성이 되는 것도 아닐 테니.

 

 

 코로나의 위세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수도권을 중심으로 더 늘어만 간다. 아직 어린아이를 위해 외출도 삼가며 최대한 집에 있으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은 일이다. 아무리 집돌이 집순이라 해도 잠시 잠깐의 외출은 다시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코로나를 잊고 잠시 콧바람이라도 쐴 겸 동네 산책로를 걸으려고 해도 큰 문제가 있었다. 점점 커가는 아이를 아기띠에 의존해 함께 다닌다는 것 말이다. 내년 봄 이전까지는 절대 필요가 없을 것만 같았던 유모차가 간절해진 이유였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가 짧은 시일 내에 잠잠해질 것도 아니라는 생각, 겨울에 찬 바람을 맞으며 산책할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때 아내의 한마디가 내 마음을 돌려세웠다.

유모차도 카시트처럼 적응이 필요하대.

 그 어떤 반박이 필요 없는 설득이었다. 검진을 위해 병원을 오가며 카시트와 씨름했던 기억이 떠올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 조사

 후보군은 아내가 다음, 네이버, 블로그, 맘 카페의 리뷰, 후기를 모두 샅샅이 뒤져 이미 추려 놓은 후였다.

부가부, 오르빗, 잉글레시나

 이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할 예정이었다. 처음 방문한 베네피아에 모든 제품이 있었다면 결정이 쉬웠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르빗이 없었다. 투박한 느낌의 잉글레시나보단 부가부에 눈길이 더 갔다.

 

트렁크에 유모차를 싣고 내리는 일은 내 담당이었기 때문에 무겁고 큰 디럭스보단 절충형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중에서도 매장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부가부 비5가 우리의 마지막 선택지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아내가 말을 꺼냈다.

오르빗도 보고 싶은데.
결정한 거 아니야?
다 보고 결정해야 후회가 없지. 그리고 카페 이런 데서 옆으로 돌릴 수 있는 게 얼마나 편한데.

 그렇게 오르빗을 볼 수 있는 베이비플러스까지 들리고 나서야 부가부 비5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오르빗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느낀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 아파트 인근에서 오르빗 실사용자를 마주친 때였다. 벤치에 앉아 있던 엄마의 오르빗은 정방향을 보고 있었다. 옆으로 돌려 아이와 마주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매

 

 지인 찬스를 쓰기 위해 문의만 해본 결과 부가부 제품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득과 실을 고려해서 내린 합리적인 결정은 결국 후보였던 잉글레시나 앱티카 써밋 쟈카드였다. 가격과 부수적인 혜택이 무거움을 이긴 순간이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

 

 9월쯤부터 주문을 넣고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매장 오픈 일정이 연기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몇 번이나 그냥 취소하고 부가부 비5를 사던지 아니면 내년에 나올 부가부 비6를 사자는 말이 오고 갔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가 우리의 기세를 꺾었다. 차가워진 바깥공기도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는 일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주문이 들어갔다는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아내는 그로부터 며칠 동안 왜 이렇게 택배가 오지 않느냐며 투덜거렸지만, 우리는 마침내 집 앞에 놓인 거대한 택배 상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돈내산


조립과 시운전

단아한 자태로 우리를 기다린다.

 아내의 표정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다른 육아 용품이 왔을 때보다 더 신나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달 여를 기다린 제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매뉴얼을 꺼내놓고 그림을 보며 순서대로 비닐을 벗겼다. 조립에 일가견이 있는 아내를 배려해 공정은 공평하게 아내와 나 50:50으로 진행했다.

구성품 별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거대한 바퀴는 크기만으로 안정감을 준다.
매장에서 체험했던 대로 접고 펴는 것. 시트 조절이 완벽하다. 무게도.

 조립을 끝낸 유모차를 보니 어서 태우고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다고 자는 애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들뜬 마음을 억누르고 미세먼지가 잠잠한 날, 날이 조금 포근하다면 함께 산책로를 걷기로 아내와 그렇게 약속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삶의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여가 시간을 즐기는 방법까지, 언급하자면 밤을 새워야 한다. 그중에서도 영유아 시기에 가장 많이 회자되며 언급되는 것이 아이의 수면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출산 전에 아내와 계속 이야기했던 부분도 그것과 맥락을 함께한다.

하나, 아이는 원래 계속 깬다.
         10개월 동안의 삶의 방식이 변하는 과정엔 부모의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     아이는 원래 운다.

         그것이 아이의 언어이다.

 그렇다. 시간이 지나며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의 수면 시간은 늘어나며, 함께 부모의 수면 시간도 늘어난다. 하지만 더불어 늘어나는 것이 있다. 모유량이다. 아이가 자는 시간에도 엄마는 쌓이는 모유를 주기적으로 따로 비워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모유수유 필수 육아템 첫 번째. 유축기

아내가 사용 중인 시밀레 프리티(cimilre Free-T) 웨어러블 유축기

 아내 또한 그 시기를 지나고 있고 육아를 위한 아이템의 도움을 받고 있다. 출산 초기에는 시 보건소에서 지원하는 유축기를 대여해서 사용했으나 동일 모델이 아닌 휴대용을 따로 구매했다.

 콘센트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문제는 배터리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 사용 후에 습관적으로 충전을 해 놓아야 다음 사용 시에 난감한 상황을 피해 갈 수 있다.

 

이전에 사용하던 지퍼백 형태의 MOTHER-K 모유 저장팩

 이 유축기와 짝을 이루는 1회용 모유 저장 팩이 있다. 처음에 사용하던 저장 팩은 유축 후에 밀봉할 때나 젖병에 옮겨 담을 때 손이 계속 닿아 신경이 쓰였다. 아내에게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이거 사면 유축한 다음에 젖병도 필요 없고 닫을 때 손 안 대도 돼서 좋은데 이걸로 살까? 어차피 사긴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답변은 한정적이지만 이번 경우엔 평상시보다 더 흔쾌히 대답했다.

그거 괜찮네.

모유수유 필수 육아템 두 번째. 모유 저장팩

 오래지 않아 도착한 택배 상자. 그 안엔 새로운 형태의 모유 저장팩과 부속품들이 담겨 있었다. 백일이 지난 상황이라 유축기 관련 소모품들도 함께 도착한 모양이다.

 시밀레 프리티백(cimilre Free-T bags). 설레임 용기를 닮은 이 모유 저장팩은 청결 측면에서는 확실히 의심할 것 없는 디자인이다. 연결 방법도 그렇게 어렵진 않다.

 

프리티 유축기에 프리티 백 연결 방법

유축 후에 밀봉은 더 간단하다.

프리티 백 유축 후 밀봉

 치명적인 단점은 하나였다. 아이가 긴 숙면에 들기 전 젖꼭지를 연결해 수유를 시도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유가 새는 바람에 대 환장 파티가 벌어졌다는 것. 이후에 아내가 물만 담아 확인해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모유 저장팩으로서 청결과 편리함. 이 두 가지의 장점만으로도 아내는 만족해했다.

 

 한 번씩 이렇게 새로운 육아 용품들이 도착할 때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무거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그중에서 가끔 그렇지 않은 제품들도 있긴 하지만.


*참고 사항

*사용법 숙지 미숙에서 기인한 것인지 제품 불량에서 기인한 것인지 확인된 바는 없다. 그러나 아직 그 원인을 모르며 아내는 시도할 생각이 없다.

**이전에는 젖병에 유축 후에 모유 저장팩에 옮겨 담아 수유할 때 다시 젖병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 모유 저장팩을 사용할 경우엔 모유 저장팩에 유축이 가능하니 수유 시에도 젖병이 필요 없다. 젖꼭지 연결 후에 모유만 새지 않는다면.

출처 입력

 

 

 

 

 아내가 질문을 꺼낸 건 할로윈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아이의 백일 사진 촬영이 며칠 후에 있을 예정이었기에 기억은 선명하다.

 

이거 살까?

 

 육아 용품과 끼니를 때울 신선 식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로 오는 요즘, 나의 답변은 한결같다.

 

필요하면 사야지.

 

 그러면 보통 휴대전화에 결제를 알리는 문자가 오는데 이번은 조금 달랐다.

 

와서 한번 골라봐.

 

12종의 위엄

 


 

머거본 a.k.a 술안주

 

 아이가 잠든 후 멍하니 TV에 고정되어 있던 눈알을 굴려 아내의 휴대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안에 펼쳐진 것은 끝도 보이지 않는 머거본의 향연이었다. 맥주 한 캔이면 한계에 다다르는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해 술은 입에도 댈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아내가 운전에 미숙한 이유도 있었다. 또한 모유 수유 중인 아내가 술을 마실 것도 아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만 나는 이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의 간식

 

 그랬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아내 스스로를 위한 선물이었다. 대량 구매가 가능한 품목들이 있었지만 샘플러처럼 여러 가지를 맛볼 수 있는 할로윈박스 세트(12종 구성)가 괜찮아 보였다. 할로윈 박스를 증정한다는 말도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내의 한마디 말이었다.

톡딜이라 12,900원이면 살 수 있어.

 

 할로윈의 기원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그리고 톡딜은 무엇인지 들어본 적도 모르는 내가, 그렇게 아내의 구매를 지지했다. 정가 32,000원 대비 약 60% 할인된 가격. 아직도 믿을 수 없는 그 가격에 결제는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아담한 주황색의 할로윈 박스

 애초에 결제할 때만 해도 음식점 앞이나 마트의 흉물스러운 크기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택배 상자 안에 담긴 그것의 크기는 꽤나 아담했다.

언제나 첫 만남은 설렌다.
하얀 박스 안에 넣을 거면 다 넣지 김새게 몇 개를 빼놨다.
하얀 상자는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맥주를 부른다.
그래서 꺼냈다. 하지만.

 가지런히 정리한 12종의 간식거리를 주방 구석에 자리한 이케아 이바르 선반에 올려놓았다. 이미 공간을 차지한 수많은 라면과 다른 과자들을 밀어내고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함께 꺼내본 최애 하이네켄 150 ml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를, 아내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째려본다.

 

기분만 내보는 거야.

 

 

 

 

요즘 들어 거의 하루에 한 번은 택배가 온다. 한 번 이상 오는 날도 허다하다. 코로나의 영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영향이 더 큰 듯하다. 대부분의 택배는 내용물을 알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게 뭐야?”

“일단 열어 보면 알아.”

 

 아내는 해맑은 얼굴로 택배 박스를 뜯는다.

“삼립호빵?”

 무언가를 산다고 하면 사지 말라고 했던 적은 없지만, 유난히 신경 쓴 포장 박스에 괜스레 의구심이 일었다. 곰곰이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놓친 부분이 없는지 되짚었다.

‘호빵만 먹으면 되는 걸 혹시 충동구매를 한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를 두고 신이 나 박스를 여는 아내. 아이 때문에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아내가 무엇을 들고 꺼내서 보여준다.

 

“그게 뭐야?”
“여기다가 호빵 쪄 먹는 거야. 이거 한정판인데 나 사고 품절. 대박이지?”

 

 대단한 건 알고 결혼했지만 언제 봐도 대단한 여자다. PS4 대란이 일었을 때도, 괄도네넴띤 한정판 대란이 일었을 때도, 마스크 대란이 일었을 때도 그 어려운 걸 아내는 묵묵히 해냈다. 아 그리고, 최근 닌텐도 스위치 대란에서도. 특히 이런 한정판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립호빵 호찜이 굿즈 에디션’

 

 내용물은 전체 단팥 호빵 6개, 야채 호빵 3개, 피자 호빵 3개였다. 그리고 호찜이. 호빵의 맛이야 일 평생을 먹어 왔는데 궁금해할 것이 없었다. 오로지 나의 주 관심사는 호찜이였다.

 

 육아 때문에 정신없던 날이 며칠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상자를 다시 열었다. 왜 단팥 호빵과 야채 호빵이 반대로 들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랜 경험에 의존해 야채 호빵을 찾아냈다. 이상하게 아직도 단팥 호빵에는 손이 안 간다.

 

 아는 사람은 안다. 사진을 자세히 봐도 알 수 있지만 왼쪽에 야채, 오른쪽에 단팥이 들어있다. 그리고 호찜이를 사용해 호빵을 쪄냈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1. 아래쪽의 물통에 물을 조금 넣는다.

2. 하얀색 채반 위에 호빵을 하나 올린다.

3. 뚜껑을 닫고 전자레인지에 1분 돌린다.

 

 그렇게 데워 낸 호빵은 코흘리개 시절에 슈퍼 앞의 찜기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던 딱 그 맛이었다.

이로서 월동 준비는 끝났다.

 

*전체 개봉기 및 실 사용기는 아래 영상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s://youtu.be/ntdPI4HI6-0

 

 

 

부루마불 이후

 

 부루마불을 선택하고 나서 형에게 받을 생일 선물을 고르기는 조금 더 수월해졌다. 새로운 보드게임을 찾기 위해 다른 블로그와 게임 포스트들을 들락거렸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은 워해머였다. 워해머에 대한 글과 위키를 들락날락한 후 아내에게 말했다.

 

“축복이 나오면 나중에 워해머 같이 해야겠어.”
“그게 뭔데?”
“외국에서 되게 유명한 보드게임 같은 건데. 매뉴얼이 있고 그거에 맞춰서 피규어 같은 거 사서 하는 거야.”

 

아내는 가만히 설명을 듣다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서 그거 언제쯤 할 수 있는 건데?”
“초등학생은 돼야 할걸?”

 

*작성자 주 : 현시점에서 축복이는 아직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


아그리콜라

 

 노선을 수정해 찾은 것은 농장을 운영하는 게임이었다.

 보드 게임 회사 직원들이 뽑은 보드 게임 순위 중 1위였을 것이다. 그 글에 따른 설명으로는 무슨 상도 수상했으며, 세계 대회가 있으며,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행히 이번엔 오배송 없이 택배가 잘 도착했다.

 

*작성자 주 : 1화 내용 참고

2020/04/01 - [주전부리 레시피/벨 소리가 울리면] - 땡스 기빙 it. 1화 - 부루마불 클래식

 

땡스 기빙 it. 1화 - 부루마불 클래식

벨 소리가 울리면  요즘 같아서는 각종 청구서에 가슴이 철렁할 일뿐, 가슴 뛸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벨 소리가 울리는 날에는 죽은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 뛰고야 마는 것이다. 바로 택배 박�

berrymixstreet.tistory.com

 

 아내도 나도 처음 접해보는 게임의 구성물을 잠시 넋을 놓고 살폈다. 우선 옵션으로 주문한 카드 프로텍터에 게임 카드를 하나씩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매뉴얼을 정독하며 한참 동안 게임 진행 방법을 찾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튜브에서 어떻게 하는지 찾아볼까?”
“조금만 더 읽어보자.”

1인 플레이 가능한 이유가 있다.

 

 이대로는 게임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다시 정리해야 할 판이었다. 매뉴얼을 몇 번이나 정독한 시점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유튜브에서 찾아보자.”

 

 유튜브에는 친절하게 게임 방법이 잘 설명된 영상이 있었다. 영상을 참고로 해서 2인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준비한 후 게임을 진행했다. 한 시간이 넘어서야 게임은 간신히 끝이 났다. 내 바람과는 달리 승리의 여신은 이번에도 아내에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크게 밉보인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수많은 자원과 게임에 필요한 카드.
보드게임에 점수표가 웬 말인가.
매뉴얼에는 게임 방법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분명히. 한글로.

 그 뒤로 아내는 아그리콜라를 하자는 말에 진저리를 친다. 게임을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를 패배자로 남겨 두기 위해서.’

 

 그래서 혼자서라도 나는. 이 게임에 매진할 것이다.

벨 소리가 울리면

 요즘 같아서는 각종 청구서에 가슴이 철렁할 일뿐, 가슴 뛸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벨 소리가 울리는 날에는 죽은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 뛰고야 마는 것이다. 바로 택배 박스를 손에 든 택배 기사님에 의해서 말이다. 우리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기별

 게임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생일은 타이틀을 두 개 정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없는 좋은 기회이다. 하나는 아내로부터. 하나는 형으로부터.

 

 하지만 불행하게도 올 초엔, PS4뿐만 아니라 닌텐도에도 주목할 만한 신작은 없었다. 웬만한 타이틀은 다 들고 있지만 손이 가지 않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아내의 임신으로 무언가 조금 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촌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 생일 선물 뭐 받을래?"

 

 순간 굳어 있던 두뇌는 빠르게 움직였다. 게임 타이틀을 고를 때처럼 빈틈이 없었다. 두 눈은 쉴 새 없이 집을 채워 놓을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 보드게임이 생각났다.

 

"부루마불."

 

부루마불 클래식

실종

 택배가 온다는 주말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배송 조회를 눌러본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기도 안양으로 와야 할 택배가 광주로 가고 있었다. 경기도 광주 말고, 전라도 광주 말이다. 사촌 동생에게 사진을 보낸 뒤 허탈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거 맞아?"

 

택배는 광주광역시를 향해 간다.

 사촌 동생이 전전긍긍하며 판매자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대신 구매자들의 성토장이 된 QnA 게시판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나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결혼 전, 언젠가 보냈던 명절 선물이 송장번호가 뒤바뀐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방법은 없었다. 우선 기다려보는 수밖에.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작성자 주: 송장번호가 뒤바뀌면 택배가 엉뚱한 주소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건은 제대로 간다. 배송정보만 뒤바뀌어 보일 뿐이다. 전라도 광주의 구매자는 경기도 안양으로 가는 자신의 택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기척

 그날 저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앞에 들어온 택배 상자가 하나 보였다. 눈대중으로 박스 크기를 가늠해보니 기다리던 그 택배가 맞았다. 다른 택배일 리 없었다.

이게 뭐라고 설레인단 말인가!?

 어린 시절, 집에 부루마블 클래식이 있는 친구를 그렇게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그것이 생겼다. 오늘만큼은 세상 어떤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서울 구경

 우리 부부는 바로 판을 벌였다.

부루마불 클래식의 게임 설명서
부루마불 클래식의 돈과 게임말, 건물, 황금열쇠, 땅 카드
부루마불 클래식 게임 준비 - 땅 카드 꽂는 판에 소음방지 매트가 뚫릴까봐 깐 해커스 오픽(*미안)
부루마불 게임 말 - 출발 전

 나는 세계를 돌며 각지를 매입하고 호텔을 올렸다. 아내는 씩씩대며 국내의 관광 명소를 매입하는데 그쳤다. 그것도 잠시, 일은 황금열쇠의 저주에서 시작되었다.

 

들어는 보았는가?

반액 대매출’

‘건물 유지비 지불’

*작성자 주: 반액 대매출 - 본인이 들고 있는 땅 중 가장 비싼 곳을 반값으로 판다. 건물 유지비 지불 - 본인이 들고 있는 땅의 건물에 대해 일정 비율로 금액을 지불한다. 호텔이 제일 비싸다.

 

 황금열쇠는 나에겐 반액 대매출 두 번과 수많은 호텔에 대한 건물 유지비 지불을 한 번 요구했다. 건실한 사업가인 나는 대규모 매각을 단행하며 재기를 노렸다. 아내가 들고 있던 우대권도 개의치 않았다. 처음 서울 구경을 할 때만 해도 버티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이어 두 번째 서울 구경을 할 때 생각했다.

 

‘뭐 이딴 게임이 다 있지?’

 

 나의 유년기, 군대 시절을 함께 했던 그 게임이었다. 추억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주사위를 던졌다. 내가 들고 있던 거의 모든 땅은 이미 아내의 차지가 되어있었다. 반환점을 앞에 둔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번에 서울 또 걸리면 그만하자.’
"그래"

 

 싱긋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설마 하며 주사위를 던졌다. 탁 소리를 내며 뱅그르르 돌다 멈춘 주사위는, 나에게 세 번째 서울 구경을 시켜주었다.

패배 후에 남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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