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

 언제부터 라면을 좋아했는지 그 시기는 불명확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하나 있다. 어린 시절 종종 아버지께선 라면을 박스로 가져다 두셨다. 그때만 해도 불과는 거리가 먼 미취학 아동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라면을 부숴 먹는 방법을 깨우쳤던 것이 아닌가 한다.


짜파구리에 대한 단상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라면 새로 나왔대.”

 

 나에게 있어 그것은 애플 신제품 출시에 버금가는 이벤트였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새로 나온 스타벅스 텀블러 일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신상 명품 백, 혹은 신차일 수도 있겠다. 설레는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뭔데?”
“진진짜라. 진짬뽕이랑 진짜장 섞은 건가 봐.”

 

 기생충에 나온 짜파구리가 농심에게 얼마나 많은 수익을 안겨주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라면 애호가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이벤트였다는 것이다. 농심으로서는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두 개 팔면 이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진진짜라 하나로 그 맛을 충분히 낼 수 있다면 굳이 그 두 개를 살 필요는 없었다. 오뚜기가 농심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제대로 올렸다 평할 수 있겠다.

*작성자 주: 짜파구리 시식회에 대한 정치적 논란은 사양합니다.


진진짜라

 마스크를 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시선은 정확했다. 3개 정도 남은 진진짜라 중 하나를 카트에 재빨리 담았다. PS4 Pro 대란이 일어났을 때 기억이 났다. 토이저러스와 근방의 모든 일렉트로 마트, 백화점을 돌아 간신히 샀던 기억 말이다.

 

 그날의 점심은 라면이었다. 함께 산, 조선 호텔 레시피로 담근 열무김치로 맛을 돋울 예정이었다. 진짜장과 진짬뽕을 얼마나 잘 섞었을지 궁금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짜왕이 짜장라면 중에는 맛을 제일 잘 살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포장이나 조리법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면도 마찬가지. 끓는 물에 면과 건더기스프를 넣고 5분간 삶는다. 그다음은 시리에게 맡긴다.

 

“시리야, 5분 후에 알려줘.”

진진짜라님 영접.
건더기 스프를 넣고 물을 끓이는 거였구나...........
행복의 건더기 스프는 없었다.
추웠지. 얼른 온탕으로 가자.
건더기 스프를 넣고 물을 끓인 후 면을 넣습니다.....
순서야 어떻든.
맛있기만 하면 되지.

 정확하게 5분 후 물을 따르고 액체 스프를 넣는다. 그때 아내가 물었다.

 

“물이 좀 많은 거 아니야?”

 

물은 끓는점을 지나면 증발을 시작한다.

 아차 싶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태연한 얼굴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졸이면 돼.”

 

 다행히 면은 생각보다 많이 불지 않았다. 아내가 삶아 준 계란 반쪽을 올리니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한 젓가락을 뜬 후 아내와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참았던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거 물건이네. 물건.”

스파게티만 말 수 있는 건 아니다.
좋은 한 끼였다.

 정말로 한동안 진진짜라가 시장의 물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농심이나 삼양에서 노력하지 않는 이상.

*작성자 주: 라면 애호가로서의 주관적 견해에 의한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이에 대한 논란은 사양합니다. 의견은 환영합니다.

 

‘일단 꼭 한 번은 먹어보길.’

별점 : ★★

      ★: 먹어본 사람에게 맛을 물어보세요.

★★: 궁금하니 꼭 한 번은 먹어볼 만한

 ★★★: 사서 드시면 됩니다. 살 수만 있다면

-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

 

벨 소리가 울리면

 요즘 같아서는 각종 청구서에 가슴이 철렁할 일뿐, 가슴 뛸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벨 소리가 울리는 날에는 죽은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 뛰고야 마는 것이다. 바로 택배 박스를 손에 든 택배 기사님에 의해서 말이다. 우리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기별

 게임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생일은 타이틀을 두 개 정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없는 좋은 기회이다. 하나는 아내로부터. 하나는 형으로부터.

 

 하지만 불행하게도 올 초엔, PS4뿐만 아니라 닌텐도에도 주목할 만한 신작은 없었다. 웬만한 타이틀은 다 들고 있지만 손이 가지 않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아내의 임신으로 무언가 조금 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촌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 생일 선물 뭐 받을래?"

 

 순간 굳어 있던 두뇌는 빠르게 움직였다. 게임 타이틀을 고를 때처럼 빈틈이 없었다. 두 눈은 쉴 새 없이 집을 채워 놓을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 보드게임이 생각났다.

 

"부루마불."

 

부루마불 클래식

실종

 택배가 온다는 주말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배송 조회를 눌러본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기도 안양으로 와야 할 택배가 광주로 가고 있었다. 경기도 광주 말고, 전라도 광주 말이다. 사촌 동생에게 사진을 보낸 뒤 허탈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거 맞아?"

 

택배는 광주광역시를 향해 간다.

 사촌 동생이 전전긍긍하며 판매자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대신 구매자들의 성토장이 된 QnA 게시판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나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결혼 전, 언젠가 보냈던 명절 선물이 송장번호가 뒤바뀐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방법은 없었다. 우선 기다려보는 수밖에.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작성자 주: 송장번호가 뒤바뀌면 택배가 엉뚱한 주소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건은 제대로 간다. 배송정보만 뒤바뀌어 보일 뿐이다. 전라도 광주의 구매자는 경기도 안양으로 가는 자신의 택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기척

 그날 저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앞에 들어온 택배 상자가 하나 보였다. 눈대중으로 박스 크기를 가늠해보니 기다리던 그 택배가 맞았다. 다른 택배일 리 없었다.

이게 뭐라고 설레인단 말인가!?

 어린 시절, 집에 부루마블 클래식이 있는 친구를 그렇게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그것이 생겼다. 오늘만큼은 세상 어떤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서울 구경

 우리 부부는 바로 판을 벌였다.

부루마불 클래식의 게임 설명서
부루마불 클래식의 돈과 게임말, 건물, 황금열쇠, 땅 카드
부루마불 클래식 게임 준비 - 땅 카드 꽂는 판에 소음방지 매트가 뚫릴까봐 깐 해커스 오픽(*미안)
부루마불 게임 말 - 출발 전

 나는 세계를 돌며 각지를 매입하고 호텔을 올렸다. 아내는 씩씩대며 국내의 관광 명소를 매입하는데 그쳤다. 그것도 잠시, 일은 황금열쇠의 저주에서 시작되었다.

 

들어는 보았는가?

반액 대매출’

‘건물 유지비 지불’

*작성자 주: 반액 대매출 - 본인이 들고 있는 땅 중 가장 비싼 곳을 반값으로 판다. 건물 유지비 지불 - 본인이 들고 있는 땅의 건물에 대해 일정 비율로 금액을 지불한다. 호텔이 제일 비싸다.

 

 황금열쇠는 나에겐 반액 대매출 두 번과 수많은 호텔에 대한 건물 유지비 지불을 한 번 요구했다. 건실한 사업가인 나는 대규모 매각을 단행하며 재기를 노렸다. 아내가 들고 있던 우대권도 개의치 않았다. 처음 서울 구경을 할 때만 해도 버티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이어 두 번째 서울 구경을 할 때 생각했다.

 

‘뭐 이딴 게임이 다 있지?’

 

 나의 유년기, 군대 시절을 함께 했던 그 게임이었다. 추억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주사위를 던졌다. 내가 들고 있던 거의 모든 땅은 이미 아내의 차지가 되어있었다. 반환점을 앞에 둔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번에 서울 또 걸리면 그만하자.’
"그래"

 

 싱긋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설마 하며 주사위를 던졌다. 탁 소리를 내며 뱅그르르 돌다 멈춘 주사위는, 나에게 세 번째 서울 구경을 시켜주었다.

패배 후에 남은 것들

 

연구 주제: 업무 이야기 말고 우리는, 밥을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가정: 대부분의 이야기는 밥을 먹으며 전해진다.

예외: 일부는 차를 마시면서도 전해진다.

대상: 연구원 L (글쓴이를 지칭한다.)


1st try : 티 타임

 연구원 L은 과묵한 편이었다. 회사에서는 업무 외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가 업무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주로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특히 팀장님이 없을 경우에 주제는 더욱 다양해졌다. 그런 그의 표정이 심각해진 것은 사수가 차를 한잔하자며 그를 따로 불러냈을 때였다.

 

"저 이번 달까지만 일하게 됐어요."

 

 연구원 L은 애꿎은 핫초코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한 만큼 그의 몸엔 카페인 분해 효소도 부족했다. 그런 그가 오후에 마실 수 있는 것은 카페인이 없는 음료뿐이었다. 그것도 겨울엔 유자차 아니면 핫초코로 한정되었다. 까다로운 그보다 더 까다로운 팀장과 그의 사수였다. 그 사이에서 큰 문제 없이 몇 년을 잘 지내왔기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팀장님한테는 말하셨어요?”

 

 그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언젠가는 떠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다가온 퇴사였다. 그녀는 미안한 기색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전부터 이야기했었는데 오늘 결정 나서 알려주는 거예요.”
“어디 좋은 데로 가시나요?”
“그런 건 아니고 사정이 있어서.”

 

 일신상의 이유. 그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연인이 헤어질 때처럼 나름의 이유는 있었겠지만 묻는다고 상세히 알려줄까. 그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의 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들을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의 단호한 표정은 돌이킬 수 없음을 말하고 있었다.

2nd try : 런치

 회사란 곳이 그러하듯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체하고 쉽게 망하지 않는다.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연구원 L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팀장님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려보고 싶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입사하자마자 이런저런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경력직인 연구원 L을 포함한 팀장 이하 그의 팀원은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가며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회사 사정이 변하며 위기가 몇 차례 있었다. 구조조정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던 셋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점심은 특별했다. 연구소 대부분의 직원들은 싸고 가까운 곳을 선호했다. 그러나 합의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새로운 밥집을 찾아다녔다. 새로 조성된 업무 단지에 있었던 회사라 맛있고 가격도 적당한 곳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은 조금씩 범위를 넓혀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맛있는 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날은 종종 가는 ‘카가야쿠’라는 선술집으로 향했다. 업무 단지라 대부분의 가게가 점심 메뉴가 별도로 있었다. 그 가게의 점심 메뉴는 일본 라멘이었다.

* 글쓴이 주 : 그때는 지금만큼 일본과의 관계가 경색되기 전이었다.

쿠로마유 라멘

 대부분의 메뉴가 좋았지만 그날의 주메뉴는 쿠로마유 라멘이었다. 돈코츠 라멘에 특제 흙마늘 기름으로 풍미를 돋운 것이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메뉴였다. 그 순간에 팀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적어도 연구원 L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사수가 팀장에게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은 알고 있었다. 연구원 L도, 팀장도 다시는 그렇게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할 기회는 없으리라는걸. 마주치고 사라지는 그날의 노을처럼.

그날의 노을.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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